▲ 여수진 (퀴어동네 대표, 공인노무사)

선거에서 성소수자는 어떤 존재일까. 성소수자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각양각색의 공보물을 펼쳐놓고 누구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 삶이 나아질지 고민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총선 뉴스 속에서 눈길을 끌 만한 소식이 있었다. 집회에서 자주 보던 군 인권활동가가 더불어민주연합의 국민추천 비례대표 후보가 됐고, 국민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동성애자 국회의원 나오나”라는 보수·개신교 신문의 득달같은 보도와 극우 개신교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고, 당 차원에서 그를 컷오프(공천 배제)했다는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선거 뉴스를 보는 심장박동 수가 갑자기 올라갔다. 양심적 병역거부 활동을 ‘병역기피’라고 하는 컷오프 핑계는 궁색하고 모욕적이었다. 당 관계자의 입에서 “종교계에서 반발이 거셌다”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그가 성소수자라서 문제가 된 것이 자명해 보였다.

선거 국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모욕은 익숙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렬했던 최근 기억은 2017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촛불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국민 저마다의 정치적 효능감이 하늘을 찔렀던 그때, 퀴어 친구들과 맥주 캔을 들고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며 토론회를 봤다. 그때 인권변호사 출신인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 입에서 ‘(동성애를)반대하죠’ ‘동성애 합법화는 반대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멀쩡히 살아있는 존재들이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가 부인당하고 불법이 됐다. 단톡방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광화문에서 적폐 청산을 외친 수많은 깃발 중에 무지개도 꽤 지분이 있었건만 새로운 나라에 성소수자들은 시민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말은 칼이었고 여럿이 깊게 베였다.

성소수자가 벽장을 나와 공론장이나 공적 영역에 등장하는 것을 사회는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축제의 광장은 매년 쉽게 열린 적이 없고, 군대가 변희수에게, 숙명여대가 트랜스젠더 신입생에게, 감리교가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에게 한 일을 우리는 보았다. 보이는 족족 망치로 때려 땅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두더지 게임처럼, 유독 성소수자는 사적영역에만 머물 것을, 보이지 않을 것을 강요당한다. 젠더에 따른 정체성을 지우지 않으면 사회에 머무를 자격을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을 차별이라 부른다. 그래서 “차별에 반대하지만,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거나 “차별은 반대지만 동성결혼은 시기상조”라는 말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이 모순이다.

민주시민이라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내 가족, 직장동료, 이웃, 며느리(혹은 사위라고 불러도 괜찮다), 내 아이의 선생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누구라도 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민주주의 정신은 지배층 가부장 남성만 사람으로 대접받았던 신분제를 타파하고 여성, 노동자, 어린이,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존재들이 자기 모습 그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된 것에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21대 국회를 사람으로 표현하면 ‘55세 SKY대학을 나온 남성’이라고 한다. 선거철마다 후보들이 빨강, 파랑, 노랑, 녹색 등 다양한 색 옷을 입고 춤추는 것을 보면 퀴어퍼레이드라도 온 것 같은 착시가 생기지만 뽑고 나면 결국 또 50·60대 특권층의 가부장 남성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변한 적이 없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이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낙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수의 특권층 가부장이 모여 누가 시민이 되고 누가 시민이 될 수 없는지 판단하고 극우 교회집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문제다.

국민투표 1위를 하고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반대를 당하고 자격이 취소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개개인의 공적 공간인 일터에서 성소수자 국민의 자리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성소수자인 채로는 비국민으로 살아야 하는가. 22대 국회 임기 중인 2027년이면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20년이 된다. 부디 새로운 국회는 그동안 평등에 대한 책무를 방기한 것을 반성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그 빚을 갚길 바란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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