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2. 14. 선고 2022가단5175018 판결

손익찬 변호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 손익찬 변호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1. 개요와 쟁점

고인은 1962년생 여성으로 2019년 10월31일 서울대에 청소원으로 입사해 기숙사 청소업무를 하다가 2021년 6월27일 새벽 기숙사 직원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급성심근경색). 고인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고, 2022년 1월경 승인처분을 받았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사망 전 12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은 44시간 55분으로 적지만 △1주일에 6일을 출근해 휴일이 부족했다.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고(엘리베이터가 없는 노후 건물의 쓰레기를 직접 옮김, 코로나19로 인한 쓰레기 증가, 환기부족으로 인한 샤워실 곰팡이 청소 어려움) △2021년 6월 한 달 동안에만 다수의 직장내 괴롭힘이 확인되는 등 업무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개인적 위험요인이 없었다 (음주력, 흡연력, 과체중, 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 등)

이 사건의 쟁점은, ‘업무시간이 과소한 상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높은 업무강도 등 요인들만으로 안전배려의무 위반(민사책임)이 인정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이다.

2. 서울행정법원의 판결(확정됨)

유가족은 2022년 6월경 민사소송을 제기해 2024. 2. 14. 1심에서 일부 인용 판결을 받았고, 쌍방이 항소하지 않아서 확정됐다. 먼저 1심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용자인 서울대가 안전배려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봤다.

1)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은 주 5일제로 1일 8시간이지만 실제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 4시간씩 근무를 더 하게 되어 피로가 누적됐다.

2) 고인 혼자서 기숙사 한 동의 청소를 담당했다. 그런데 이 건물은 1983년에 건축되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로, 계단을 통해서 무거운 청소용품을 옮기고 각 층에 모인 쓰레기도 계단을 통해서 옮겨야 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다른 기숙사 동에 비해 힘들었다. 그리고 매일 각 층의 침실(층별로 19~25개),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복도, 독서실, 계단 등을 매일 청소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체류시간 증가 및 1회용 배달용기의 빈번한 배출로 인한 쓰레기 증가(1.83~2.87배), 환기가 되지 않는 샤워실의 곰팡이 제거, 그 외 동 외곽 청소와 잡초 제거에도 동원됐다.

3) 고인은 청소 업무량이 많고 힘들어서 다른 동으로 근무장소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2021년 9월 이후로 변경이 미루어졌고 업무 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4) 2021년 6월1일자 인사이동으로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팀장이 변경됐는데, 이 팀장이 매주 수요일 회의를 신설하고, 점심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했으며, 업무와 무관하게 출퇴근 복장을 점검 및 품평하고,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2차례 실시해 그 점수를 근무평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고, 전례 없는 청소 검열을 실시해 업무 강도 및 스트레스가 증가했다. 이 중 ‘출퇴근 복장 점검 및 품평, 필기시험’은 고용노동부와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각각 직장내 괴롭힘과 인권 침해를 인정했다.

다만 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고인이 본인의 심혈관계 질환 위험요인을 알고 있었고 업무량이 많았으므로 스스로 피로를 낮출 수 있는 조치를 했어야 함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사망 당일 쓰레기 업무를 마친 후 힘들고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에서 휴게실에서 계속 멍해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이 확인되고 △고인의 나이와 기저질환(이상지질혈증)을 고려했을 때 피고의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구체적인 손해배상 범위에 있어서, 법원은 △원고가 근무할 당시의 정년은 60세였지만 정년이 지나더라도 촉탁 5년(1회 계약)의 근로계약을 체결해 근무한다고 규정돼 있고, 실제로도 청소원들 중 촉탁계약 체결이 거부되지 않았으므로 65세까지 근무했을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과실상계와 손익상계의 순서에서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3. 평가

가. 안전배려의무 위반이 인정될 수 있을까

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은 다음 민사소송에서도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가족과 상담하는 변호사의 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괴롭다’이다. 민사소송에서는 상당인과관계 외에도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 즉 사용자의 잘못을 찾아내고, 그것이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 이 점을 설명하는 일은 무척이나 괴롭다.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더라도 유가족들이 도저히 납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법정근로시간의 상한선인 1주 52시간을 준수한 경우에 과연 안전배려의무 위반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건은 민주일반노조가 최초 문제제기를 해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자료협조까지 받아서 상당히 많은 자료가 입수된 상태였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는 일부 혐의에 관해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했고, 서울대 인권센터도 인권 침해를 인정했다. 앞서 본 것과 같은 노력을 토대로 수많은 증거자료들이 모여서, 사용자로서의 안전배려의무를 위배했음이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나. 과실상계에 있어서 고려 요인

1심 법원은 고인에게 “사망 당일 쓰레기 업무를 마친 후 힘들고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에서 휴게실에서 계속 멍해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책임인정 요건에서의 ‘과실’과, 공평한 손해의 분담의 원리에 입각하는 관점에서 보는 ‘과실상계’에서의 ‘과실’은 각각 의미가 다르다. 후자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과실상계에서 지적된 사항이 꼭 잘잘못을 따지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항이 ‘공평의 법리’ 차원에서 보았을 때 재해자 측에게 불리한 사정인지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본인에게 닥칠 위험에 관해서 항상 최악의 경우만 상상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피곤하게 산다’라는 핀잔을 줄 것이다. 이미 손해가 발생했거나 혹은 그 위험이 구체적으로 임박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위와 같이 다소 막연한 상황에서의 대처 미숙을 과실상계에서 고려한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의문이 남는다.

다. 촉탁직으로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을지

대법원은 피해자가 사고로 사망한 이후에 정년이 연장된 경우 그 연장된 정년에 기한 일실이익 상당의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된다고 본다(대법원 1991. 5. 24. 선고 90다18036 판결). 특별손해인 경우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을 경우에만 배상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 사안은 ‘계약 갱신 조건’에 관해 서울대가 모를 수가 없으므로 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안은 정년 자체가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정년 도과 이후에 촉탁직으로 계약을 새롭게 체결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는 계약 갱신에서 서울대가 특별한 서류를 요구하거나, 복잡한 심사절차를 거쳐서 갱신 여부를 결정했다기보다는 사실상 서류를 제출하면 계약이 갱신됨이 확인됐다. 특히 청소원의 경우 100% 계약이 갱신됐다. 따라서 정년 이외에 추가로 5년치 일실수입도 인정받게 됐다.

라. 과실상계와 손익상계의 순서

대법원은(2022. 3. 24. 선고 2021다241618 전원합의체 판결) 업무상 재해 관련 손해배상에 있어서, 사용자가 아닌 제3자가 가해자인 경우에 종전과 달리 손익상계 이후에 과실상계를 한다는 입장을 최초로 정립했다. 이 사건의 1심 법원은 위 법리가 가해자가 사용자인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렇게 볼 경우 유가족 입장에선 크게 유리해진다. 전체 손해액이 5억원이고 산재보험금으로 2억원을 받고, 과실비율이 50%인 경우를 가정해보자. 변경 전 입장과 같이 과실상계 후 손익상계를 하게 되면 (5억×0.5–2억)=5천만원으로 산정된다. 반면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이 손익상계 후 과실상계를 하게 되면, (5억–2억)×0.5=1억5천만원으로 산정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