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여기 칼럼에서 썼던 이 말을 지난 22일 나는 또다시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찾아와 사무실에서 임금피크제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서도 정년연장과 연결해서 임금피크제가 논의, 도입돼 왔다고 소개하면서 정년제도에 관한 내가 썼던 칼럼을 읽었다며 기자는 정년제도에 관해서 물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라고 몇 번을 말했다.

2. 기자는 KB국민은행 퇴직노동자들을 취재했는데, 그들은 회사가 신의를 저버렸다는 데에 분노하더라고 전했다. 기자는 퇴직노동자들이 사측이 신의를 배신했다는 주장을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사측이 신의를 배신했다는 주장으로 소송하는 것은 아니고,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원고 노동자들의 대리인으로서 내가 하고 있는 주장들을 소개해야 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대한 분노, 부당함, 억울함 등을 소송에서 법적으로 구성해서 주장하는 것이 소송대리인으로서 내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사합의로 처음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에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자들에게는 근로자 정년을 2년 연장해서 60세 정년으로 한 것이니,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됐으니 그 정년을 2년 더 연장해 줘야 하는 것임에도,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임금을 삭감하면서 정년연장 없이 60세로 정년퇴직시킨 것이니 퇴직노동자들은 사측에 약속을 저버렸다며 분노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주장을 정리해서 나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금피크제 모두에 해당하는 주장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오늘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는 주장의 대부분은 고령의 노동자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업장에 따라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치지 않아서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위반이라는 주장을 보태서 주장하는 일도 있다고 나는 대답해 줬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사용자는 거의 대부분 과반수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쳐서 도입하기에 이런 주장을 할 만한 사건은 몇 되지 않는다.

오늘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를 살펴보면 단순하다. 정년연장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의 시행에 따라 사업장에서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하면서 도입했다, 법적으로 정년 60세로 보장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임금을 삭감한 것이니 분노하는 것이다. 어차피 법에 따라 정년이 60세로 보장되는 것임에도 사업장 근로자의 정년 60세로 하고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임금을 삭감하니 부당하다, 억울하다 하는 것이다.

3. 아사히신문 기자는 일본과 한국에서만 임금피크제가 문제되고 있다고, 연공급 임금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냐는 취지로 물었다. 근속과 연령에 따라 장기근속의 고령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임금을 받게 되는 임금제도 아래서는 정년연장은 불가피하게 임금피크제를 수반하게 되는 것 아니겠냐며, 내가 동의한다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기대를 짓밟았다.

연공급제가 문제라며,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해 왔던 것이 이 나라에서 벌써 몇 십 년이다. IMF 외환위기 전부터,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더욱 거세게,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민주니 보수니 정권의 색이 무엇이라도 한결같이 사용자들 단체는 주장하고, 이에 편승해 권력을 발표하고 추진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신규 입사자의 초임과 비교해서 3배를 받는다고 비난했다. 권력은 연공급제를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로 변경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사용자들에게 활용하도록 했다. 연봉제니 성과급이니 하는 이름으로 급여명세서에 기재돼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권력과 사용자 자본의 노력의 흔적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조 조합원에서 배제된 사무관리직에서 이런 제도가 주로 도입돼 운영돼 왔다. 기자가 물었으니 나는 대답을 해 줘야 했다. 몇 십 년을 장기근속해서 3배를 지급받게 됐다면, 그 이전에는, 특히 근속이 얼마 되지 않는 시기에는 몇 배나 적은 수준을 계속해서 지급받아 왔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임금제도 개선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몇 배나 적게 받은 걸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부터 말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가만히 사용자 자본과 권력이 말하는 그 도입 목적을 곰곰이 들어보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생산성 향상과 기업 경영 효율을 위해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건비 절감과 노동강도 강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장기근속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EP로 나아가서 임금피크제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특별히 정년을 더 연장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고령노동자의 임금삭감을 당연시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4. 정년연장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이 나라 노동운동이 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가 요구해서 사측과 협상해 왔다. 그 요구를 보면, 대부분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연계해 정년연장을 주장한다. 이건 프랑스·독일·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서 연금 수급연령과 연계해서 논의·추진했던 것을 참고한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정년연장은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추진됐던 데 대해,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노조·노동운동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등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반발을 들어보면, 정년이 연장되면 연금 수령이 늦어지기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이 당연히 연계돼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반발인 것이다. 우리 노동자의 경우에는 정년 퇴직 이후 바로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연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나라에서 노조는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해서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60세 정년을 연장하라고 요구해서 교섭하고 투쟁하고 있다. 이렇게 요구해서 투쟁하면 언젠가는 정년이 연장될 수 있게 될 것이다. 62세·64세·65세 등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노사합의로, 법적으로 보장될 것이다. 물론 그때도 임금피크제를 통해서 사용자들은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올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볼 일이다.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노동자의 고용보장에 유리한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정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해서 투쟁하는 것이 노조의 일이지만, 정년제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정년제도는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하게 되면 그 사업장에서 퇴직하는 제도다. 정년퇴직은 정년에 도달한 노동자가 퇴직하는 것을 말하는데, 노동자가 퇴직 의사를 표하고 사용자가 이를 수락해 노동자가 퇴직하는 것일까. 정년퇴직에 있어서는 노동자가 퇴직 의사를 표하지 않는데도 그 정년에 도달하게 되면 사업장에서 퇴직하는 것인데, 여기서 노동자가 퇴직하지 않겠다고 해도 소용없고, 당연히 퇴직처리된다. 당연히 퇴직처리된다는 것, 이것은 사용자가 노동자를 퇴직처리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용자가 일정한 연령 도달을 이유로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퇴직시키는 것이 정년퇴직이다. 이 세상에서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내쫓는 것을 해고라 한다. 정년퇴직은 사용자가 노동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퇴직시키는 것, 법적으로 해고라고 봐야 한다. 법은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23조). 기간제 근로자가 아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대해서 일정 기한을 정해 놓고 그 기한의 도래를 이유로 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근로계약상 노무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데도 정년이라는 나이에 도달했다고 사용자가 퇴직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 그래서 나는 “정년제도는 해고제도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해고, 즉 “정년퇴직은 부당한 해고”라고 덧붙였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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