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벌써 몇 달째 의대 정원 확대문제로 인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의사들의 이기주의와 정부의 무대책이 공히 비판받는 중이다.

우리나라 산업 중에 가장 큰 산업은 무엇일까.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료산업이 가장 큰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서 200조원 넘는 거대한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관련 종사자들도 많다. 그중 핵심 역할을 하는 의사들의 소득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건강보험제도가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복지재정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건강보험이다. 2023년에 100조원 넘어섰다. 국민연금은 일천조원 가까이 쌓여 있고 매년 소득의 9%를 내고 있어서 징수는 가장 많다. 그러나 아직 노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지출이 적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보건의료 재정은 전체 사회지출의 40%를 차지한다. 우리가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병원에 자주 안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강제보험이어도 저항이 적은 것은,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내는 돈과 상관없이 누구나 동일한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은 대부분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예산서에서 확인하는 복지예산에 10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재정은 빠져있고 그중에 정부가 지원하는 15조원가량만 포함돼 있다.

의료보험의 형태는 사회보험형이다. 의료기관이 민간인 신분으로 의료를 제공하고 국가로부터 진료비를 받는 시스템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들 중 상당수는 의료 종사자들이 국가에 고용돼 공무원처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영의료서비스형으로 의료보험이 운영된다. 사회보험형 국가들일지라도 공공의료의 영역이 일정 부문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은 공공의료의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해 코로나 등 위기가 닥쳤을 때 민간의료가 일정하게 그 일을 수행한다.

물론 그 돈은 국가재정에서 부담한다. 우리는 직장가입자는 2019년 기준으로 연소득 7천810만원을 상한으로 해 6.46%를 보험료로 낸다. 지역가입자는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낸다. 여기에 더해 전체 건보재정의 15%가량을 담배세로 조성되는 건강증진기금과 일반재정에서 지원하고 있다.

건강보험 문제는 ‘돈을 주는 방식’

핵심은 이 돈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가다. 우리는 일본을 본떠서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가 의료행위에 가격을 정해 놓고 진료비에 대해 사후 지급하는 방식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의료서비스는 총 7천519개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격통제에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진료의 자율성이 높고 진료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으니 의료인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국가는 의료비를 아끼기 위해 수가를 억제한다. 하지만 의료인은 진료행위를 늘려 총수입을 증대시키려 한다. 과잉진료와 이로 인한 의료비 증가가 단점이다. 과잉진료의 정도는 측정이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사례는 있다. 건보공단에서 직영하는 일산병원과 다른 의원들의 진료비를 비교한 결과 20%가 넘는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산병원은 공공기관소속 의사들이므로 과잉진료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잉진료를 막고자 포괄수가제를 일부 활용하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질병당 사전에 책정된 진료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과잉진료 문제는 해소된다. 하지만 어차피 받는 돈은 그대로니 과소진료가 우려된다. 의사들이 기피해서 확대 적용도 잘 되지 않고 있다.

영국은 의원급 1차 진료기관에 인두제를 적용한다. 의사가 자기가 책임진 지역의 주민 머릿수에 일정액을 곱해서 보수를 받는다. 보통 2천명 기준이라고 한다. 해당 지역의 주치의 역할을 하면서 관리해 주고 큰 병원 가기 전에 문지기 역할을 한다. 진단서를 마구 발급했다가는 재계약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만과 독일은 총액계약제를 시행한다. 의료보험조합이 의사병원단체와 협의를 통해 한 해 예상되는 의료비 총액을 책정한 후 해당금액을 사전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마치 공사를 총액계약하듯 한다.

이러한 방식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노조 등 의료조합이 상호부조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자신들의 조합원이 병원에 찾아가면 염가에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런 계약방식은 의사 개개인에게는 불리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에 과잉진료의 유혹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과소진료 문제는 남는다.

우리나라는 의사들의 과잉진료에 더해 환자들의 의료쇼핑 문제도 심각하다. 영국 등에 다녀온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며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은 신속함이지만, 그 신속함은 과잉진료와 고비용구조로 인해 의사들의 고소득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돈이다

지금 갈등의 논점은 숫자 문제다. 의사가 부족한 건 맞지만 2천명씩 늘리는 건 지나치다는 게 의사들 주장이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찍어누르고 있는 건 맞다. 의사가 부족한 것도 분명 맞다. 의사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사들의 억지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다. 의사가 과잉이라면 소득이 떨어져야 하고 의대를 가려는 사람이 줄어야 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일 것이다. 다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논쟁의 문제다.

의사들 내부의 구조문제도 있다. 대형 병원들이 전공의를 값싸게 부려 먹고 있다. 주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몰리면서 필수의료(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필수의료가 인기가 없는 건 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다만 ‘피안성’에 맞추기 위해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 과잉쪽을 낮추는 것이 재정을 위해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필수의료의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지 가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부족하지만 진료 건수는 많다. 수가는 낮지만 박리다매형 진료 시스템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의료부실이 더 문제다. ‘피안성’의 인기는 비급여 진료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가 문제는 아니다. 최근 10년간 의사소득이 두 배로 뛴 것도 실손보험 때문에 과잉진료가 크게 증가했기 떄문이다. 의사와 환자가 합의하는 과잉진료 현상이다.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건 환자가 적고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의사를 늘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백령도에 산부인과 의사를 채용했는데, 3억5천원이라는 연봉에도 봉사라는 말을 들으며 근무를 시작했다.

해법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전공의들의 과잉 노동은 의대 정원을 늘리면 된다. 필수의료는 수가를 올려야 한다. 재원 마련 방안이 필요하다. 다만 상대적인 것이므로 ‘피안성’을 비롯한 다른 부분에 수가를 낮추고 실손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의료의 공백도 수가로 풀어야 한다. 지역 의대에 의무 복무 조건을 두는 방안도 가능하다. 혼합 진료를 금지하고 비급여 진료를 관리·감독해야 한다.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들의 의료행위를 확대해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은 돈 문제다. 필수의료의 수가를 높이는 건 좋은데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냐하는 것이다. 과잉진료를 줄여야 가능하다. 그리고 과연 의사들 소득이 낮은가. 피안성보다 적으니 올려 달라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사회처럼 무조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제해야 한다. 욕망과 탐욕은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수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어차피 지역에서는 3억원을 줘도 의사를 못 구하는 상황이다.

의료인의 과잉진료와 환자의 도덕적 해이가 만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의료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나라가 됐다. 2017년 기준으로 한 사람당 연평균 진료횟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1회보다 2.3배 높다. 입원일 또한 2.3배 높은 18.5일이다. 그렇다고 건강지표가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 버금가는 의료서비스를 받는 스웨덴 국민은 단 2.8회 진료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문재인케어를 실시했다. 비급여항목을 급여화, 국민부담이 큰 3대 비급여항목 해소, 본인부담금 상환액을 정해 환급해 주는 정책 등이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62%에서 70%로 올리려는 계획이었다. 선한 의도였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의사들의 소득만 급증했다. 급여항목을 수가를 낮추거나, 과잉진료 방지대책을 세워야 했다. 의지 부족인지 의사들의 반발을 막지 못해서였는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의료대란에서 특이한 점은 응급실 대란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응급실 과잉 환자들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무나 응급실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상급병원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 필수의료에 별도의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

의사들도 양보해야 한다. 수가 조정은 불가피하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선한 목적으로만 정책이 결정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구체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악마는 언제든지 발호한다.

나라살림연구소장 (jcs619@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