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정부의 진료지원간호사 시범사업은) 교육과 훈련을 명시했음에도 현장에선 교육·훈련 수련도, 평가도 없이 신규 간호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경험 없는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전보하고 PTBD(피부간경유쓸개관배액) Irrigation(방광세척), 침습적 시술 동의서 및 조영제 사용 검사동의서, 상처 드레싱 등을 지시받고 있고 일반 간호사도 의사 어부인 채취, 중환자실 입실동의서, 드레싱, 처방 등을 강제 지시받고 있다.”(정유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강원대학교병원분회 사무장)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가 한 달을 넘기면서 병원들이 간호사에게 의사업무를 전가하고, 병원 경영이 어렵다며 무급휴가나 연차소진을 강요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공의들의 명분 없는 집단 진료거부와 정부의 가짜 의료개혁으로 노동자와 환자 피해만 가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본부장 박경득)는 21일 정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자발적 무급휴가” 신청서 요구

노조가 최근 현장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문의가 이탈한 상급종합병원은 병동 폐쇄가 늘고 있다. 조사된 10곳 기준 전체 병동 291곳 중 29곳이 이미 병동 통합 또는 폐쇄 방식으로 사라졌다.

조사에 따르면 폐쇄된 병동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은 414명으로,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비상의료전담팀에 재배치되거나 무급휴가 또는 연차사용을 강제당했다. 서울대병원과 제주대병원·동아대병원·울산대병원은 이미 무급휴가를 시행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연차사용을 강요하다 4월부터 무급휴가를 협의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은 6일 무급 특별휴가 시행안을 공지하면서 병상 축소, 폐쇄 간호단위 직원을 희망자로 비상진료체계 종료시까지 무급 특별휴가제도를 시행한다고 알렸다. 또 향후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신청”한다는 점을 강조한 신청서도 받았다. 현재 서울대병원 간호사 무급휴직 규모는 100여명이다.

이날 노동자들은 사용자쪽이 경영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남아 있는 간호사를 포함한 노동자를 쥐어짠다고 비판했다. 박경득 본부장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쪽 사유로 휴업할 때 사용자쪽은 휴업수당 70%를 지급해야 하고 서울대병원 노사는 100% 지급을 단협으로 체결했다”며 “이를 주지 않기 위해 무급휴가나 다른 병동으로의 배치를 종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지키려 전환 배치? 환자 안전 우려

임금을 주기 위해 전환 배치를 하는 선택도 쉽지 않다. 내과와 외과 같은 병동 간 업무내용이 판이해 적응이 쉽지 않고, 자칫 의료사고로 연결될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의료업무는 굉장한 숙련이 필요해 전공의도 특정 영역에 대해 4년이나 수련을 하는 것”이라며 “숙련기간 없이 투입되면 용어부터 알아듣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를 참관한 한 서울대병원 간호조무사는 “병상이 모자라 외과환자가 내과로 입원만 해도 수술 전 처치부터 여러 업무가 미숙해 수술이 미뤄지기도 한다”며 “업무를 맡은 간호사는 자칫 환자가 잘못될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차라리 무급휴가를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참가자들은 병원쪽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경영의 책임을 진 병원은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로 의료공백이 발생했다면서도 정작 의사들을 설득하기보다 간호사에게 경영손실을 전가하고 환자 위험을 도외시하고 있다”며 “심지어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을 매월 1천882억원씩 지원해 손실을 보전하려 하는데 왜 정부정책 실패와 의사집단의 몽니 책임을 국민의 사회보험료로 보전하느냐”고 비판했다.

“민간중심 → 공공중심 전환해야” 강조

그는 의료개혁의 본질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현재의 지역 간, 진료과목 간, 의료기관 간 의사수 불균형으로 발생한 필수의료 어려움은 의사 확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인력 수급의 공공성을 강화해 의료가 지역사회에 제공되는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대 같은 방식의 의사 선발·육성제도를 강화하고 공공의료원 같은 공공의사가 일할 기관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득 본부장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이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박 본부장은 “(의료 공백으로) 모든 피해를 국민에게 떠안기고도 정부가 의사인력을 투입하려는 곳은 의료공급 대부분을 구성한 민간영역”이라며 “국민들은 필수진료와, 지역의 의료공급을 처절하게 요구하지만 정부는 계획이 없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