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법률사무소 고른 대표변호사)

“한강 물도 녹을 때 한쪽부터 살살 녹지 일시에 녹지는 않지 않습니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료 징수에 대한 정부안을 설명하던 당시 김성중 노동부 차관의 말이다. 통상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100% 부담하는데 특고노동자에 대해서는 사업주와 각각 2분의 1씩 부담하도록 하겠다며, 꽁꽁 언 한강이 차차 녹듯이 단계적으로 산재보험 제도 내로 편입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밝혔다. 향후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등을 고려해 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특고노동자의 경우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겠다는 단서도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에 남겼다. 이것이 2007년의 일이다.

산재보험 제도는 일하다 다치고 병든 노동자, 또는 사망한 노동자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을 지는 의무보험이다. 사용자의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해 사업주를 대신해 노동자와 유족에게 보상하는 제도다. 업무상 재해란 업무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고 사업주는 그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이익을 취하기에 사업주가 보험료 부담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할 책임을 부담하는 원리다.

그런데 특수고용직 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불리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동일·유사하게 종속관계에 있으면서도 2007년 법 개정으로 뒤늦게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현재 적용대상 직종이 18개로 확대되고,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도 엄격하게 제한됐다. 기존의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플랫폼 종사자나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가입대상에 포함되었다. 최소한 산재보험제도에 있어서는 특고노동자를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다르지 않게 보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지다. 보험료는 산재보험 제도의 일부로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권리는 근로의 권리의 내용에 포함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현행법은 ‘산재보험 노무제공자’)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부담한다”는 위임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위 대통령령을 제정하지 않았다. 정부에게는 입법자가 정한 바와 같이 산재보험료를 사업주가 전부 부담하는 직종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한 것이다. 이에 위 단서의 위임에 따른 대통령령을 제정하지 않은 행정입법부작위가 특고노동자의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동일 직종 내 본질적으로 동일한 근로자보다 오히려 부담능력이 낮은 특고노동자에게 산재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배달종사자인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재산권도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다.

헌법재판소는 얼마 전 해당 청구를 기각했다(헌재 2023. 10. 26. 선고 2020헌마93 결정). 다만 해당 위임규정의 입법기술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입법부작위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것일 뿐, 사업주 전액부담 제도의 시행은 법상 이미 예정된 것이기에 정부에 그 직종의 선정과 구체적인 시행시기를 대통령령으로 제정할 의무가 있음은 인정했다. 또한 인용의견(소수의견)을 밝힌 재판관들이 지적하듯, 동일 직종 특고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구체적인 노무제공의 방식이나 그 양태가 상이할 수 있으나 직종별 공통적인 특성을 고려해 산재보험법 적용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정 범위 이상의 특고노동자는 근로자에 준하는 보호를 하겠다는 법상 위임규정의 취지에 따라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및 그 외 다른 요소를 함께 고려해서 사업주 전액부담 직종을 선정하는 것이 입법기술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장조사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대상 직종을 정하거나 동일 직종 내에서 사용종속관계의 정도 등의 편차가 지나치게 큰 경우는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영역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한강은 이미 열일곱 번 얼었다 녹았다. 정부의 행정입법부작위가 특고노동자 근로의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유념하며 17년 전 약속을 더 늦지 않게 지키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