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영어강사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목적으로 ‘자유직업 소득자’ 지위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꾸며낸 학원장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강사가 주 5일 고정적으로 근무하며 원장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는 취지다.

1·2심 “강의시간 고정, 근로시간 선택 재량 없어”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천안시 소재의 한 학원 소속 영어강사 A씨가 원장 B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2일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0년 11월부터 약 9년간 영어강사로 근무했다. 주 5일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6시간 동안 매일 출퇴근하면서 수업시간이나 학생수와 관계없이 매달 고정급을 받아왔다. 그런데 2020년 1월 퇴사하고도 퇴직금 1천200여만원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원장 B씨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를 주장했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았다. B씨는 이번 민사소송에서도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은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 A씨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며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 판단을 보면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B씨가 구체적인 업무 지휘나 감독을 했다고 판단한 부분이 작용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강사로 근무한 관계로, 원고의 근무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의시간은 사실상 고정돼 있어 근로시간을 선택할 재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가 수행한 업무 내용은 피고가 제공한 커리큘럼이나 재료에 의해 결정됐다”고 판시했다.

‘강사 법적 지위 신청서’ 사문서 위조 또 기소

특히 A씨와 민법상 ‘위임계약’을 체결했다는 B씨 주장을 일축했다. B씨는 2018년 10월 학원을 양수받은 후 ‘강사 법적 지위 선택 신청서’를 A씨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는 법정에서 관련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B씨는 사문서위조죄로 기소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위임계약 체결을 부정했다. 재판부는 “강사 법적 지위 신청서에 원고가 ‘근로자 지위’와 ‘위임(자유직업소득자) 지위’ 중 후자를 희망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더라도 피고의 영업 양수 이후에도 원고의 근로형태가 실질적으로 달라진 바가 없는 이상 원고가 계속근로관계를 단절할 의사표시를 했다거나 근로관계 승계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씨는 학원 양수 이전 기간에는 영업양도인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가 영업을 양수할 당시 ‘강사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다’고 약정한 점을 종합해 보면, 근로관계는 피고에게 포괄 승계돼 계속성이 유지되므로 원고의 근로기간 전체에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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