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먼저 선고받을 수 없나요?” 지난 12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고 나서 노조 법규부장은 일부 조합원들이 문의하고 있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함께 일하는 고 변호사에게 질문했더니 고등법원에서 따로 판결 선고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를 인정해 주지 않은 원고들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그대로 판결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주장과 입증을 보충해서 새롭게 재판을 받아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 않고 파견근로로 인정된 원고들은 청구금액 계산만 새로 정리해서 판결받기만 하면 되니 한 두 번 변론기일을 진행하고서 선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고 변호사 대답은 한 사건에 대해 원고별로 따로 선고받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2011년 7월 소송을 제기했으니 12년8개월을 기다렸다.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끝내고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자가 아닌 현대제철 정규직 근로자로 근무할 수 있기를 바람에서 하는 질문일 텐데, 이제 한두 달만 기다리면 고등법원에서 판결받고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될 거라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런 대답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받지 못한 원고들에게도 자세히 판결 취지를 설명해 주고 고등법원에서 변론 대응방안도 말해 줬다. 따지고 보면 12일 대법원이 피고 사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질문이고 대답이었다.

2. 이날 대법원은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원청 현대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파견근로를 주장하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른 근로자지위 확인 및 임금 청구한 사건에 관한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 사측이 상고한 지 4년6개월 만에 대법원이 판결을 선고한 것인데, 원고 109명 사건과 원고 52명 사건으로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두 개였다. 2006년 12월 파견법개정에 따라 고용의제(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간주)가 고용의무(사용사업주의 근로자로 고용할 의무)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이미 개정 전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제된 원고들과 그렇지 않고 개정파견법에 따른 고용의무가 적용되는 원고들로 나뉜 것이다. 비록 사건을 나눴지만, 재판은 한 사건처럼 병행해서 변론을 진행하고 현장검증했다. 고용의제 사건이든 고용의무 사건이든 1심 순천법원과 2심 광주고등법원에서 원고들 모두가 파견근로로 인정돼 원청 현대제철의 근로자로 간주되거나 고용해줘야 한다고 판결받고, 정규직 즉 현대제철 근로자가 지급받은 임금 수준과의 차액 청구부분도 인정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법원은 고용의제 사건과 달리 고용의무 사건에 관해서는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 파견근로로 인정하지 않았다. 크레인 등 공정 부문이 아닌 정비와 유틸리티 공정에 종사하는 원고들에 대해서 파견근로로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심 광주고등법원에서 다시 판결하도록 대법원은 판결했다. 12일 이런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여러 기자들에게서 판결 취지를 묻는 전화가 왔다. 이에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서 어떤 취지로 판결한 것인지 꼼꼼히 읽어서 대답해야 했다. 대법원은 전기정비와 기계정비, 그리고 폐수처리 등 유틸리티 공정에 종사하는 원고들에 대해서 파견근로를 인정한 원심이 잘못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는 사내하청 근로자로 근무를 시작한 2년의 대상기간동안 원청의 사용지시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이었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 증거를 보강할 수 있다면 고등법원에서 얼마든지 파견근로로 판결받을 수 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취지로 대법원이 판결한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대답하고, 노조에도 설명해줬다. 이것은 대법원이 원심 그대로 파견근로로 모두 인정한 고용의제 사건 원고들에는 전기정비와 기계정비, 유틸리티 공정 부문에 종사하는 원고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보면, 이런 취지로 대법원이 판결한 것은 명확한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대법원이 엇갈리게 판결하면서 사내하청 근로자인 원고들 중 파견근로로 인정된 원고들은 하루라도 빨리 재판이 끝나 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3.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날, 기자회견이 있었다. 금속노조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대법원 판결 직후에 대법원 정문 앞에서 개최해서 했던 것인데, 사전에 준비해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대법원 판결 최종 승소!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지위를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다”는 제목이다. 앞에서 말한 고용의무 사건 원고들 중 기계정비와 전기정비, 그리고 유틸리티 공정에 종사한 원고 11명은 결코 이번 대법원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기자회견했던 것은 지나치게 대법원 재판부의 판단을 환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런 기자회견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61명 중 150명의 원고들에게는 대법원 재판부가 파견근로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한 것이니 당연히 환영할 일인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금속노조 담당임원과 민주노총 전남본부장, 그리고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 등이 차례로 발언하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이 나라에서 불법파견을 자행하는 사용자들을 엄단하라고 윤석열 정부에 촉구하고, 원청 현대제철은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인정, 사죄하고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4.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은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이다.”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의 사업을 위해 사용된다. 아무리 파견이 아니고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라고 주장해도 이런 실체를 가리지 못한다. 원청 사용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체계를 운영하는 까닭은 그 근로자를 원청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 근로자들이 다른 사용자의 사업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원청 사용자는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 실체가 분명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은 원청 사용자가 정규직 사용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니 당연히 정규직에 대하여 차별 취급받는 노동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해도 그 본질을 숨길 수 없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노동현장은 차별 취급을 본질로 하는 현장이고, 그래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이라고 절규하는 것이다.

5.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참으로 기나긴 시간이었다”고 쓰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파견근로를 주장해서 근로자지위 소송을 최초로 제기했던 것이 2011년 7월, 바로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사건에 관한 소장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제출했을 때다. 2010년 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소를 제기하면서, 현대제철 순천공장(당시는 현대하이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대규모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당시 순천공장을 오가며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상대로 수차례 설명회를 하고서 조합원들의 결의를 끌어모아 소송을 하게 됐던 것인데, 파견근로로 인정될 수 있다고 비정규직노조에 자문하고 조합원들에게 교육했지만 과연 이 나라 법원이 자동차처럼 혼재작업을 하지 않는 제철소조차도 인정해 줄지 나는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초로 MES, 즉 통합생산관리시스템을 통한 제철소의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는 법원 판결을 이 사건 1심 순천법원에서 받아냈다. 그리고서 12년8개월만인 지난 12일, 마침내 대법원에서 판결받은 것이니 “참으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라고 판결한 현대제철을 포함해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근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원청 사용자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를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파견근로일 수밖에 없다. 그걸 노동자가 어떻게 주장하고 입증할 수 있는지에 따라 법원에서 판결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일 뿐, 그 실체 내지 본질은 명백하다. 이 나라 파견법은 현대제철과 같이 파견법 위반의 사용사업주를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집행 의지가 있다면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증거를 확보해서 원청 사업주를 기소해서 파견근로를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법원이 판결했음에도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 근로가 지속돼 파견법 위반의 범죄행위가 자행되고, 이로 인해 피해자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불법파견 엄단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외쳐 본다. “즉각 정규직 전환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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