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전공의의 명분 없는 집단 진료거부와 정부의 내용 없는 필수의료 개혁 정책이 부딪힌 지 한 달째지만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틈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교수도·개원의도 진료거부
의사 집단 진료거부 ‘확전’ 태세

1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는 수련병원 100곳 기준 1만1천994명이다. 전국 의대 40곳의 휴학 신청은 7천594건으로 전체 의대생 1만8천793명의 40.4%에 달한다. 대학 6곳은 의대생이 수업 거부에 나섰다.

교수도 직을 던졌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6일 25일 집단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직 완료 전까지 병원 진료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방침 철회를 복귀 단서로 달았다. 여기에 엉덩이를 빼고 있던 개원의도 집단행동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강경대응 방침이다. 18일 오전 대통령실은 의대 정원 2천명도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왔지만, 이어진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담장을 세웠다. 정부는 이날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간부 2명의 의사면허를 3개월간 정지했다.

‘강대강’ 대결에서 웃고 있는 건 정부다.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올랐다. 의협과 전공의의 집단 진료거부 움직임 초기였던 지난달 16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3%로 이전주 29%보다 올랐고, 긍정평가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2%)가 처음 등장했다.

다만 지금은 의대 정원 증원이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를 끌어 올리고 있지 못하다. 지난 15일 기준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6%로 이미 8일 조사 당시 39%에서 하락했다. 의대 정원 증원은 긍정평가 이유 1위(23%)를 지키고 있지만 비율은 5%가 하락했다. 김원일 이화여대 간호대학 초빙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지지율 상승은 이미 숫자에 다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전공의 사태 한 달’ 피해상담 1천414건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원을 지키는 보건의료인과 환자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전공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상담은 1천414건, 피해사례로 신고·접수된 것은 509건이다. 509건 가운데 350건은 수술 지연, 88건은 진료 취소, 48건은 진료 거절, 23건은 입원 지연이다. 19일이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낸 후 한 달로, 사태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문제는 환자 피해 누적에도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화는 시작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중재가 이뤄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사무처장은 “전공의의 집단 진료거부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의 명분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필수의료 개혁이라는 정책의 본질보다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이라는 방식으로 의제를 키웠고 그에 따른 부수적 효과, 이를테면 선거를 앞둔 지지 여론 형성 같은 대목에만 취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치 전략 없는 필수의료 개혁
의사는 기승전 “수가 인상”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부실하다는 비판은 초기부터 있었다. 의대 정원을 2천명 증원하고도 이들을 어떻게 배치해 양성할지 계획은 전무했던 탓이다. 오랫동안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치는 시작부터 배제됐다. 정부는 2천명 정원 규모를 공개한 2월에도 “새로운 의과대학 설립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역의사제는 구체적인 언급도 없었다. 정부 브리핑을 맡고 있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법안을 두고 오히려 “유감”을 밝히기도 했다.

공공의료 육성·배치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의대 정원 증원만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하긴 어렵다.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 지원결과를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지원율은 178.9%로 가장 높았고 △안과 172.6% △성형외과 165.8% △재활의학과 158.8% △정형외과 150.7%로 나타났다. 205명을 모집한 소아청소년과는 53명만 지원해 25.9%로 가장 낮았고 △핵의학과 37% △흉부외과 38.1% △가정의학과 49.8% △방사선종양학과 52%로 나타났다. 2천명을 늘려도 이런 구조를 바꾸긴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사 직역 내부 경쟁만 치열해지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전공의의 반발은 이 대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단체가 내세우는 대안은 필수의료 수가 인상이다. 필수의료쪽 수가를 높은 수익을 얻는 인기과의 수가만큼 올려달라는 이야기다. 공감대는 넓지 않다. 김 초빙교수는 “수가가 수치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의사들의 높은 수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며 “높은 수익을 분배하지 않기 위해 의대 정원에 개입하려고 응급실과 중환자실마저 비우는 행태가 이미 누적해 있어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낮은 수가에도 의사가 고연봉을 받는 배경은 의대 정원 통제와 진료과잉에 따른 결과다. 김 초빙교수는 “대화를 통한 사태의 해결은 필요하지만 선행조건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대한 인력만이라도 먼저 복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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