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자유기고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문제가 화제다. 무려 예산의 4조6천억원을 삭감한 여파가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관련해서 최근 과학기술자단체 ESC(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에서 예산 삭감 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현장에 있는 과학 연구자 및 학계의 의견과 그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을 청취하고 있다. 첫 번째로 참여한 정당은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었다. 조국 대표는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비 삭감이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청취한 뒤 문제의 핵심은 이해관계자들인 연구자, 기술자 등이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어떠한 개입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라 정리했다.

이번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전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인 황정아 박사의 참여 속에 이뤄졌다. 현장의 대학원생, 연구자 등 다양한 이들이 단순히 연구비 삭감 및 민주주의의 부재만이 문제가 아니라 청년 연구자들이 처한 열악한 사회경제적 위치에서 오는 불안감도 토로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최근에 있었던 대전의 유성구 일대에서 벌어진 전세사기 문제였다. 전세사기가 과학기술자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유성구의 문지동과 전민동의 아파트단지와 오피스텔에서는 전세사기로 무려 100여명의 청년과학자가 내쫓기는 일을 겪으며 사실상 연구비의 삭감과 함께 주거 불안정성 문제까지 겹쳐 연구자들이 상당히 열악한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생활의 불안정성과 국가의 자의적인 예산집행, 민주주의 부재 같은 문제 외에도 교수와 학생 간 연구비 문제, 노동착취 문제, 비효율적인 교습제도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현장의 연구자와 학생들에 의해 제기됐다. 이들은 지식노동자의 성격과 예비 전문인으로서의 학생적인 성격이 혼재돼 그 자신을 온전히 노동자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종의 도제식의 교습제도가, 다른 한쪽에서는 경제개발기 노동력의 대량 공급을 위한 포드주의적 교육방식의 ‘교차’가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노동자’로서 자기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비록 두 차례의 공청회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기존의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다른 사회분야와 마찬가지로 공공성의 구현에 있어 한국적인 특질이 관철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95%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대형병원 등 민간 의료기관에 일정한 정도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대신 전공의에 대한 노동력 착취를 용인해주는 것처럼,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대학교수 및 특정 연구소에 연구비, 인건비 등의 예산을 ‘지대’의 형태로 분배하며 일정한 공공성을 요구하는 대신 그 밑의 대학원생들의 노동자성을 박탈해 그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를 용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바로 국가와 그 국가가 사적인 주체들에 강제한 공공성의 혜택을 보는 인민들이다.

경제개발도 재벌 같은 특정한 기업집단에 금융지대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하는 대신 극심한 노동력 착취를 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았던가? 박정희는 1971년 10·2 항명 파동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었던 김성곤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혹을 치른 다음 사죄의 의미로 자신이 갖고 있던 금성방직, 쌍용그룹 등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게 지꺼야?” 박정희는 재벌을 재벌가문의 사유재산이 아닌 경제개발이라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국가 관료제는 사적인 주체들의 사익추구를 용인해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동력 착취 같은 여러 문제를 묵인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정량의 공공성을 확보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언뜻 보기에 이 시스템은 값싼 노동력의 공급이 이뤄지고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이 지속된 현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잘 작동했던 것처럼 보인다. 노동착취를 당한 이들도 다른 분야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값싸게 향유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영역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이익에 의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관료제가 총괄하는 한국 사회의 비민주성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격변 없이 유지된 데는 이런 ‘교환’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저성장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관료제의 자의적이고 전제적(專制的)인 지배가 어디까지 통용될 수 있을까.

R&D 예산 삭감이 가져온 후폭풍 때문에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조차도 삭감된 예산을 복구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변화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과거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관료제의 전제적인 지배 위에서 가능했던 대통령의 자의가 그나마 지금까지 제공되던 공공성마저 훼손하게 되었을 때, 공공성의 회복이 기존의 관료독재 시스템으로 복귀해야 하는지 아니면 노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민주성의 확립에 기초한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의 이행의 계기여야 하는지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자유기고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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