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전통적인 경제학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통상적인 방식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 온실가스배출 비용이라는 ‘시장 실패’를 탄소가격 등으로 ‘교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탄소세 등으로 가격을 교정하면,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자동으로 오염 비용이 부과된 상품은 시장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고, 소비자는 오염을 배출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결국 기업들은 오염을 배출하는 제품생산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기술혁신을 통해 오염 배출 없는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장 실패는 정부가 ‘교정’해서 다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키면 해결된다.

하지만 생태경제학 관점으로 보면 기후위기와 같은 생태 위험은 온실가스 비용이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못해 생긴 시장 실패가 아니다. 따라서 탄소세 등으로 ‘교정’될 수도 없다. 기후위기는 시장을 넘어선 지구 생태계의 수용능력 한계까지 경제가 무한팽창하면서 생긴, 즉 경제규모의 문제에서 발생한 거시경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 생태계의 경계선을 넘는 경제의 팽창을 막으려면 미시경제적으로 시장의 오작동을 교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시경제적으로 특히 선진국 국민경제가 기존의 무한성장 경로에서 탈출하도록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생태파괴적 영향을 무시한 기업들의 무한 이윤추구 활동도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이것이 기후운동가들이 간결하게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고 제안하는 요점이다.

그러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거나 탈탄소 산업을 위한 기술혁신이 무의미하다는 것인가? 아니다. 문제는 오직 시장과 기술에만 의존하거나 기업들의 자발적인 ESG나 RE100 활동만 돕는 수준의 ‘기술환원주의’ 또는 ‘시장환원주의’다. 시장적 해법을 통째로 버릴 수는 없다. 탈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지지했던 진보 경제학자이자 정책통이었던 고 정태인은 “현재 경제체제가 의존하는 시장을 활용하지 않으면 어떠한 전환전략도 실패할 것”이라면서, 성장체제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적절히 탄소세를 부과해 시장 행위자들의 다양한 혁신활동 역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기술환원주의’만큼이나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모두 자본주의로 단순화시키는 ‘자본환원주의’도 기후위기 해법과 거리가 멀다. 맑스주의 정치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 역시 시스템의 변화를 반자본주의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분명하게 이렇게 지적한다. “과거 두 세기 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사회주의는 굉장히 달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2020년 이전에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그 후에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제안은 그냥 농담 수준을 넘어 허황된 망상이다.” 그러면 왜 기후위기의 원인을 추적하면서 사적 자본의 무한 이윤추구 욕망과 그것의 불가피한 생태파괴에 주목하는가? 말름은 “지금 이 시점에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지닌 기후 파괴적 특성을 탐구하는 활동의 목표는 오로지 전환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명확히 덧붙인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기후대응이라는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천적 해법은 시장의 활동, 산업정책을 통한 국가의 산업전환, 공동체의 참여, 거시경제의 방향 전환을 통한 경제시스템의 변화, 물질적 소비에 복지를 의존하는 삶의 방식 전환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지 어떤 특정 접근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이런 다차원적 접근법을 강조했던 이가 바로 정태인이다. 그는 “수많은 참가자들의 혁신 능력을 끌어내는 시장은 생태 전환에서 여전히 중요”하다며 탄소세 도입 등 시장적 해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산업정책을 통한 국가의 적극적 탈탄소 산업전환이나 대규모 공공 인프라 투자정책으로서 그린뉴딜 역시 기후대응과 생태전환에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결국 시장기제 활용, 산업정책, 근본적인 성장체제의 전환을 다차원적으로 추진할 때 전환은 성공할 것이라고 봤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펴는 근거는 공동체에 기반한 공유자원의 성공적 관리를 입증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엘리너 오스트롬의 “‘다중심성 원리’나 폴라니의 다원적 경제 이론에 기초한 것”이다. 전염병과 같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특정 범주(예컨대 국가)가 우월하다고 해서 다른 범주(예컨대 시장이나 공동체)를 배제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으며, 각 범주가 해결할 다양한 역할이 있다는 것이 다중심성의 원리”다. 이렇게 시스템 전환과 체제전환은 다차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최근 녹색정의당에서 탄소세-탄소배당 공약을 제안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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