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조건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여성의 날이었던 3월8일, 서울 보신각에 700여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파업의 형태로 일터에서, 삶터에서 일손을 놓은 노동자들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돌봄의 공공성 강화,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걸며 투쟁했다.

24시간과 일주일, 365일이라는 물리적인 시간. 계급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값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절하당하면서 가사와 돌봄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나의 시간표를 정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상상이 들어갈 틈도 없이, 그 시간의 절대다수를 일터와 가정에 투여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함께한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이러한 인식 아래,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저임금과 가사노동의 실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했다. 2023년 12월부터 2달간 진행한 설문조사에 총 693명이 응답했고,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21명과의 면접도 병행했다.

조사를 통해 확인한 여성노동자 저임금의 실태는 예상만큼 씁쓸했다. 70%가 넘는 사람들이 250만원 이내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비정규직의 경우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했고, 최저임금 이하로 월급을 받는 사람 역시 60%가 넘었다. 여성노동자 저임금 원인도 같이 물었는데, ‘사회와 기업이 여성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 ‘비정규직 등 여성들이 일하는 일자리가 더 불안정해서’가 1·2위를 차지했다. 여성노동자를 불안정 노동으로 내모는 구조를 이미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기도 하다.

또한 이번 조사는 주당 실제 노동시간과 더불어 하루 평균 가사·돌봄노동의 시간을 물었다. 후자에 7을 곱한 후, 전자를 더해 이중부담의 시간을 대략이나마 알아보고자 했다. 그 결과 58.15%가 주 54시간 이상을 일터와 가사 돌봄에 투여하고 있었다. 특히 주 52시간 초과해 일한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는 가사와 돌봄시간이 주 73시간이 넘는다고 응답도 28.5%에 달했다. 가사·돌봄노동 수행에 있어 느끼는 어려움도 같이 물었는데, “돌봄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다”(52.74%)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과로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편중되는 가사·돌봄노동 해결을 위한 방안을 1~3순위로 매기도록 했는데, “일터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두드러지게 높지는 않았다. 가사와 돌봄이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현 상황에서, 일터 노동시간 단축‘만’으로는 직접적으로 가사돌봄 부담 완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젠더화된 노동시간 단축”을 말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한편 면접을 통해 직장에서 ‘아프면 쉴 권리’를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지도 같이 물었다. 병가 자체가 없거나, 연차를 사용할 때 대체 인력을 본인이 구해야 했거나, 나의 빈자리를 동료가 채워야 한다는 점이 눈치로 작동했다거나, 사무실에 안 나오더라도 재택근무를 해야 했거나…. 아파도 못 쉬게 하는 다양한 요인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비로 약을 사서 먹고 골골대며 출근하거나, ‘못 견뎌서 그만두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 속, 퇴근 후 앓아누운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의 몫이었다.

시간빈곤과 불평등을 포함, 역행하는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3월8일 여성 파업을 조직했다. 파업은 일단락됐고, 그날의 시간은 끝났지만 일터와 삶터에서의 시간은 연속해 흐르고 있다. 노동강도 강화 없는, 고용불안 없는, 노동유연화 없는, 가사·돌봄노동의 편중 없는 젠더화된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터에 매여있는 시간을 줄이고 ‘좋은 노동시간’을 고민하며, 사회의 시간표를 재구성해가는 싸움이 더욱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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