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대한통운 교섭의무와 관련한 1심 선고가 나온 2023년 1월12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과 유성욱 노조 CJ대한통운본부장이 판결 직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란봉투법 핵심 쟁점인 ‘원청 사용자성’에 대해 대법관 전원이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면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라는 법리가 확립될지 노사정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만약 판례가 변경된다면 2010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사건에서 원청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데서 나아가 원청의 ‘교섭’ 의무까지 부담시키는 새 법리를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실질적 지배력설’ 핵심 쟁점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2일 금속노조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전원합의체는 종전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경우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12명이 사건을 심리하는 것을 말한다. 전원합의체는 이번 사건을 ‘신건’으로 정해 21일 첫 변론 기일을 진행한다.

쟁점은 ‘실질적 지배력설’ 인정 여부다. 금속노조는 2017년 1월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은 모두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하급심은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지위에 있다고 주장한 부분을 모두 배척했다. 하청업체 스스로 업무를 지시하며 임금체계를 결정해 ‘독립성’을 갖췄다는 판단이다. 하급심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사업주의 독자성·독립성을 잃어 제3자의 노무 대행기관과 동일시할 정도로 형식적·명목적으로 운영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청이 실질적으로 하청업체에 지배·결정권을 행사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2018년 12월 대법원에 접수돼 무려 5년 넘게 심리 중이다.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에 배당돼 노조와 현대중공업 대리인이 법리 공방을 벌였다. 이달까지 노조를 대리하는 민주노총 법률원(정기호·권두섭·조세화·조연민·강서진 변호사)이 상고이유 보충서면을 9차례 제출했다. 현대중공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도 8명의 대리인단(김상민·김일연·김재현·노영보·문정일·김경한·김성수·이성진)을 꾸려 5번의 답변서를 내며 방어하고 있다.

파기환송되면 원·하청 이중구조 ‘지각변동’

전원합의체가 ‘실질적 지배력설’의 범위와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핵심 사안으로 꼽힌다. 이미 대법원이 행정소송에서 학설을 판례에 도입한 사례가 있어 이를 민사소송에서도 적용할지도 관심사다. 대법원은 2010년 3월25일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노조법상 사용자는 근로계약이나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 사업주도 노조법(81조1항)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다만 당시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국한해 판단한 만큼 전원합의체 사건에서도 동일한 해석이 가능할지를 두고 대법관들의 치열한 토론이 예상된다.

‘단체교섭 청구’ 사건에서 판례가 변경된다면 원·하청 이중구조로 운영되는 산업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하급심 판례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넓히는 추세다.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고법은 올해 1월24일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원청을 ‘지배·개입’ 금지 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인정한 2010년 대법원 판단에서 ‘단체교섭 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까지 인정됐다. CJ대한통운이 2월14일 상고해 대법원 2부에 배당된 상태다. CJ대한통운 사건도 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소송과 마찬가지로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건이 5년 넘게 심리하고 있어 CJ대한통운 소송보다 먼저 대법원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원심 판결이 뒤집힐 경우 노동위원회와 하급심에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한 ‘현대제철’ ‘롯데글로벌로지스’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도·보수’ 색채 강화, 판례 변경 여부 관건

다만 대법관 구성이 ‘중도·보수’ 성향으로 바뀐 부분은 노조측에 ‘리스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지난해 12월 조희대 대법관이 취임한 이후 ‘노동 친화적’ 대법관의 색채가 옅어졌다. 올해 1월1일 퇴임한 안철상·민유숙 전 대법관의 자리에 ‘중도’로 분류되는 엄상필·신숙희 대법관이 취임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보수·중도 대 진보 비율은 7대 6에서 8대 5로 바뀌었다. ‘노동 변호사’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퇴임하는 8월과 김상환 대법관이 퇴임하는 12월 이후에는 더욱 중도·보수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단체교섭 사건은 대법원 근로조에서 쟁점을 토론하고 노동법실무연구회에서도 중요 주제로 다루는 등 지속적인 논의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를 대리하는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실질적 지배력설이 단체교섭에서도 적용될지가 핵심이고, 두 번째로 교섭 요구 사안에 대해 사안별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측은 기존 노조법의 규정 미비를 주장하며 입법론적 해결을 촉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