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희 공인노무사(노노모)

지난달 12일 호주 의회에서는 ‘허점을 막는 법(Closing Loopholes Act)’이라는 별칭을 가진 공정노동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공정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법의 울타리 바깥에 있던 플랫폼 노동자와 도로 운송노동자의 노동 기준을 설정하고 이들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노동법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한 개정안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에도 노동법의 공백 상태에 놓여 있는 영역이 다수 존재한다. 20세기 초 대량 생산 체제 속 노동자를 원형으로 하는 현재의 노동법이 노동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현행 노동법 체계가 상정하는 전형적인 노동자의 형상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직장 규율에 복무하며 고정급을 받는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그와는 다른 노동자의 얼굴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노동자들을 택배 및 배달 기사·헬스트레이너·보험모집인 등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아닌 노동자들로, 현행 근로자 개념의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법제의 부정합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554만명이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비임금 노동자는 2021년 778만명으로 5년간 약 223만명 증가했다. 표준적이지 않고 특수한 고용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특수고용 노동자, 임금노동자가 아니라는 뜻에서 비임금 노동자라고 불려 온 데서 알 수 있듯 기존에 잔여적인 범주로 여겨져 왔던 비임금 노동자들은 결코 잔여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물론 3.3%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된 이들 중에는 ‘잘못’ 분류된 노동자들도 있다. 현행 노동법상으로도 근로자가 명백하지만, 사용자의 노무관리 편의와 비용절감을 위해 위탁·용역계약을 체결해 개인사업자로 ‘오분류’된 노동자들이다. 오분류 관행은 업무의 내용과 직종의 특성을 가로질러 노동현장에 편재해 있다. 카페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부터 일반 회사의 사무직 직원까지, 근로계약서가 아닌 도급계약서를 들고 상담을 문의하는 노동자들의 면면은 놀랄 만큼 다양하다. 기존 법이 보호 대상으로 명명하고 있는데도 법 적용을 회피하거나 교묘히 빠져나가는 탈법 행위로 발생하는 오분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이 원칙대로 준수되도록 감시·감독하는 집행력을 정비해야 한다.

나머지 비임금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대개 고정급 없이 건별·개수별로 보수를 받는 많은 비임금 노동자들은 경제 불황이나 노동시장 수급 상황 악화로 단가가 하락하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낮은 단가를 충당하기 위해 빈번히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택배나 화물노동자들이 운송수단을 마련하면서 생긴 할부금을 갚기 위해 본전도 건지지 못하는 낮은 단가의 일감을 거부하지 못하고 매일 열 시간이 훌쩍 넘는 장시간 운행을 하며, 이것이 개인의 과로를 넘어 도로 위의 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의 노동법은 이러한 비임금 노동자들을 대등한 사적 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사법 소관으로 떠밀고 있다.

노동법의 목적에 비춰 볼 때 이러한 현실을 온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법의 존재 의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과 이를 구매하는 사람 간의 협상력 불균등을 완화해 민사법을 보완하고 근대 시민법 질서를 완성하는 데 있다. 약한 협상력과 불안정한 보수, 부족한 발언권에도 노동법의 공백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오분류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재분류가 필요하다. 재분류는 노동법의 재구성을 통해 가능하다. 20세기 산업사회의 협소한 근로자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동법의 좁은 문을 그대로 놔둔 채 문고리만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을 뜯어 새로 설치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과 시공간 모두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21세기의 변화하는 노동 현실에도 여전히 노동법이 유효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이들을 더 이상 문 밖에 둬서는 안 된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노동법의 빈자리가 그들에게는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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