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 약 1만명 이탈이 ‘의료대란’으로 이어지면서 허약한 국내 의료체계가 민낯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9일부터 시작한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뒤 상급종합병원에 환자가 줄고 병상 가동률이 하락하는 반면 전공의가 없는 2차 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정부도 대한병원협회에 전공의를 가르치지 않는 종합병원의 외래·입원환자와 병상 가동 현황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전문의를 중심 진료로 원활한 진료와 수술이 가능해 환자들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체계상 상급종합병원 같은 대형병원 쏠림은 꾸준히 지적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1월25일 공개한 지난해 상반기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지난해 상반기 요양급여비용은 10조723억으로 종합병원 9조454억원보다 많았다. 특히 2022년도 상반기와 비교하면 8천308억원(8.99%) 증가한 규모로, 571억원(0.64%) 증가하는 데 그친 종합병원과 대비된다. 종합병원보다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환자가 더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상급종합병원은 45곳, 종합병원은 331곳이다.

학생이자 노동자인 전공의에 기댄 상급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에게 심각하게 의존하는 문제도 드러났다. ‘의료대란’의 장본인으로 지목되지만 전공의는 국내 의료인력 중 말단에 속한다. 병원과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일하는 노동자면서 동시에 수련기간을 채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학생이다. 이들이 자리를 비웠다고 의료체계 전반이 흔들리는 자체가 국내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셈이다.

종합병원들은 사태 초기부터 이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1월23일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기관 종별 기능을 재정립해 종별 기능에 맞는 의료서비스 제공을 통해 인력 재배치를 도모하며 일정 규모 및 요건 등을 갖추고 지역에서 높은 수준의 의료 질을 유지하며 포괄적 필수의료를 충실히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을 지정해 지역 의료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정 대응’ 한편에 간호법 재부상 ‘주먹구구’ 비판

다만 정부가 이런 의료체계 개선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는 연일 의대 정원 2천명 증원과 필수·지역·공공의료 개선을 강조하지만 집단 진료거부에 나선 전공의와 의사단체에 대한 ‘엄정 대응’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정책은 없다.

게다가 지난해 직역 간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간호법도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어 ‘주먹구구식 대처’라는 비판이다.

정부는 최근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가 장기화하면서 임상전문(PA)간호사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법상 불법이다. 지난 2월27일 시행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으로 간신히 불법 소지를 덜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간호법 제정 논의가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이미 8일부터 현장에 적용한 시범사업 관련 보완 지침이 뼈대가 될 전망이다.

필수의료를 개혁한다면서도 여전히 증원한 2천명을 실제 필수·지역·공공의료 분야에 배치할 경로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이나 지역의사제 도입은 배제한 상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정부 브리핑에서 줄곧 “2025년 대입 시기상 공공의대 설립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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