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여태 꽃샘추위가 물러나지 않아 서늘한 새벽 공기에 옷깃을 조여 올리며 나섰다. 이번주 공연이 있는 음악가가 탄 비행기가 이른 시간에 도착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 팀은 영국에서 온 9명으로, 만나기 전 조금이라도 이름을 익히려고 명단과 여권 사진을 여러 차례 들여다봤다. 그렇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떠올리며 공항으로 향했다.

글쓴이에게 공항은 해외 음악가를 맞이하러 가는 곳이자, 배웅하는 곳, 또한 국내 음악가와 투어에 오르는 공간이다. 우리는 해외팀과 업무가 많은 편이라 이곳에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반복한다. 한때 자신이 방문한 곳을 기록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내 행적의 순간이 저절로 기록되고 있다면 집과 직장 다음으로 가장 깃발이 많이 꽂혀있는 곳은 공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공항 가는 것에도 마일리지 적립되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공항은 엄밀히 말하면 시설이지만,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 두 터미널을 아우르면 굉장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마치 한 동네처럼 크다. 부산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때는 김해공항을 며칠씩 오가기도 했다. 가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로도 갈 곳 잃는 길치지만, 이제 공항만큼은 익숙하다. 공항철도에서 내려 입국 층이나 도착 층에 가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음식점들이 어디에 있는지, 세관 신고 데스크는 어느 곳에 있는지, 수화물 포장이 필요한 경우 어디서 할 수 있는지, 대형 수화물은 어느 쪽에서 처리하는지, 그리고 코로나가 아직 기승일 때는 신속항원검사(PCR) 장소가 어디인지도 거침없이 인솔할 수 있게 됐다.

모르던 장소가 훤해질 만큼 자주 오가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풍경들이 눈에 잡히기 시작한다. 항공사, 여행사, 세관, 은행, 통신사, 보험사, 시설 관리, 입점 매장 등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특유한 풍경을 만드는, 바로 그곳이 공항이다. 비행기가 지연돼 몇 시간을 대기하는 일도 가끔 생기는데, 그런 날에는 개인 짐 운송 카트인 트롤리를 옮기는 공항 직원의 동작을 홀린 듯이 지켜보곤 한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기계에 직접 올라타거나 리모컨으로 작동시켜 수십 개의 트롤리를 연결해 한 곳으로 손쉽게 이동하는 모습은 꽤 흥미롭다.

입국장 앞에서 음악가를 기다리며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어느 순간 익숙한 풍경으로 변모한 그 흐름을 떠올렸다. 공연 제작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자라고 변화하게 된 시선과 이해는 새로운 형태의 관점과 자세를 만들었다.

공항이란 공간을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이 이루고 있듯, 공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공항 입국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만 해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나 연주자뿐만 아니라, 사운드 엔지니어, 조명 엔지니어, 투어 매니저, 악기 테크니션, 모니터 엔지니어 등 세세한 부분에서 역할을 하는 이들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더불어, 현지에서 기획사, 음향, 악기, 조명, 경호, 공연장, 의료팀 등이 함께 공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2020년의 코로나19 유행은 전 세계를 큰 혼란에 빠뜨리며 공연이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했다. 많은 이들이 떠났고 남은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여러 고민을 나눴다. 글쓴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떤 종류의 공연을 창작해야 하는가,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어떤 기대를 품는가, 음악가가 국가를 이동하며 팬들을 만나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발생한 환경 문제는 산업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등을 생각했다. 그렇게 4년이란 강제 단절의 기간만큼 성찰과 모색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 음악산업이 비로소 회복하는 모양새다. 공항에서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제 다시 성심성의껏 마음을 다해 음악가를 맞이하고 배웅한다.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온 듯하다.

하이징크스 대표(doyeon.lim@highjink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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