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나 여행 가 있는 동안 민지가 시아버지 식사 챙기러 올 수 있나?”

결혼한지 1년도 채 안 된 내 친구가 시어머니한테 들은 말이다. 요즘 어디 가서 여성이라 차별받은 얘기를 하면 “그건 다 옛날 일 아니냐, 요즘 MZ들은 안 그렇다더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틀렸다. 옛날이 아니라 아직도 있는 요즘 일이다.

다 큰 성인 남성이 혼자 밥을 못 챙겨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시아버지의 밥을 당신들 자식도 아닌 남의 딸 며느리에게 말하는가. 아직도 밥과 같은 식사와 챙김, 돌봄은 여성의 몫이구나, 이상한 문화가 바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돌봄노동은 필수노동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필수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아직 요원하다. 지난 5일 돌봄서비스노조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돌봄노동자의 92.5%는 여성이다. 전체 돌봄노동자 3명 중 1명은 임시직이고 월평균 임금은 152만8천원에 그친다. 전체 취업자 월평균 임금의 57.3%에 불과했다. 요양보호사의 월평균 임금은 127만1천원이고 아동 돌봄노동자의 경우 지역에 따라 임금수준이 천차만별이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고용불안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태는 특정 지역을 지정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서울 구로구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노인의 전반적인 생활을 지원하는 생활지원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 아이돌보미가 대상자였다. 이들의 노동조건은 앞에서 언급한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 직군 모두 여성의 비율은 95%를 상회한다. 전체 평균 연령은 57세였다. 50대와 60대의 연령대 비율이 43%대로 비슷했다. 고용도 불안한 처지였다. 생활지원사 98.2%, 전체 돌봄노동자 82.5%가 계약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임금도 142만원으로, 2023년 월평균 임금 300만7천원의 47.2%에 불과한 수준이다.

생활지원사로 일하시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생계비도 벌고 집안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은 가정에서도 돌봄을 도맡고 있다. 고용이 불안정해도, 임금이 적어도 집안일을 할 수 있기에 생활지원사를 선택한 것이다. 경력단절 이후, 일을 구하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평생 해오던 일이 집안일이나 육아 혹은 부모가 아팠을 경우 간호를 전담해 온 이들은 ‘여태껏 해왔던 일이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은 ‘해 봤으니까’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밖에 없어서’ 지금의 일을 선택했다. 돌봄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했고, 독박 쓰다시피 가정에서 돌봄을 책임졌지만, 집안에서 돌봄의 강도가 낮아지면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돌봄밖에 없기에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도 일터에 뛰어든다.

가정에서 여성에게 과중된 돌봄이 시장경제에서도 저임금·불안정·열악한 일자리가 돼 이중으로 부과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30·40대 여성이 돌봄을 주 업무로 하는 직업을 갖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이 돌봄이 어떻게 대우받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을 하던 안 하던 ‘맘충’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이기적인 년’ 혹은 ‘독한 년’으로 불리는 것을 매우 잘 안다. 뭘 해도 비난받는 사회에서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차별이 전보다 없어졌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말은 이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이제는 돌봄노동이 여성의 몫만이 아닌 우리 사회 공동의 몫임을 사회가 인식하고 문화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열악한 처우로 돌아가고 있는 돌봄노동을 더 이상 여성에게 기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내일은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의 상징은 빵과 장미로 근로조건 개선과 참정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이날을 다시 한번 기리며 여성 노동의 존중과 존엄을 보장하는 것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깊이 숙고해 보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gs23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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