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2005년 이후 19년이 지났다. 황씨 이후에도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는 산재사망을 노동자 스스로 끊기 위해 반올림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지난해 7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한 달간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자서비스·삼성전자판매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환경실태를 조사했다. 연구진의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 성상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성상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삼성전자판매는 2022년 12월 기준으로 총 4천95명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대형 사업장이다. 모회사인 삼성전자가 제조·생산한 가전제품을 주로 오프라인 매장 ‘삼성 스토어’를 통해서 판매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본격적으로 노동환경실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주로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근무시간 종일 고객에게 응대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소매업 특유의 정기적인 실적 압박이 적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서 드러난 삼성전자판매의 노동실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마음 다치는 노동자,
상처를 더욱 키우는 회사

연구는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총 110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설문조사와 3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예상대로 삼성전자판매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업무 후에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응답은 ‘종종 있다’와 ‘항상 있다’를 합쳐 무려 95.30%를 기록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대다수가 정신적으로 겪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음을 호소한 것이다.

이후의 문항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안전보건공단의 한국형 감정노동 평가도구를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한 결과 모든 세부 항목에서 ‘주의’에 해당하는 평균치를 기록했다. 공단의 한국형 작업장폭력 평가도구에서도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 항목에서 주의군에 해당하는 평균치가 나오며 삼성전자판매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고객 응대 과정에서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 또한 공통으로 자신이나 주변 동료들이 고객의 ‘갑질’로 인해 시달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객이 일방적으로 자기가 있는 장소까지 제품을 가져와 달라고 요구해도 군말 없이 들어줘야 했다. 심지어는 상담 때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직원의 뺨을 치는 고객도 있었다. 회사는 매장 내부에 ‘직원들은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는 문구의 팻말을 설치하고 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부담감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대신, 도리어 스트레스를 키우는 것에 앞장섰다. 직무스트레스 항목에서는 남성 응답자들의 평균 점수가 ‘관계갈등’에서 경계 위험군으로, ‘직장문화’에서 상위 25%의 고위험군으로 기록되며 사업장 또한 노동자에게 정신건강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 작업장폭력 평가도구에서도 ‘직장 내 정신적·성적 폭력’ 항목의 평균치가 주의군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들은 회사가 노동자의 감정노동에 제대로 된 대처 방안도 갖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실적 압박을 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설문조사에서는 ‘성과를 내야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낀다’는 문항에 ‘그러함’ 또는 ‘매우 그러함’을 고른 응답자는 92.94%에 달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역시 점차 가전을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줄고 있는 경우에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매출 목표를 일방적으로 사측이 통보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앉을 권리’도, ‘제대로 쉴 권리’도 없다

삼성전자판매 노동자들의 육체적 건강 상황 또한 심각했다. 근무 후에 육체적으로 종종, 또는 항상 지친다고 대답한 비율은 65.88%로 앞서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대답한 비율인 95.30%에 비하면 낮아도 절대적인 수치로는 전혀 낮지 않다. 신체 중 어느 한 부위라도 최근 1년간 통증 같은 근골격계 증상을 경험한 유증상자 비율 또한 무려 92.5%를 기록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의 근골격계 자각증상 기준 중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기준3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비율도 무릎·다리와 허리 부위에서 각각 22.35%와 21.18%인 것으로 드러났다.

왜 삼성전자판매 노동자들은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피로를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근무 중 자세’에 있다. 대다수 서비스업 노동자들처럼, 삼성전자판매 매장의 노동자들은 항상 서 있는 자세로 근무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중 1/4 이상을 피로나 통증을 주는 자세로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1.82%로, 2020년 6차 근로환경조사 중 전체 임근근로자 평균인 35%는 물론, 도매 및 소매업 종사자 평균 32%의 2배 이상에 해당했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도 일부 고객들은 직원들이 앉아 있는 모습에 ‘고객의 소리’ 등으로 민원을 제기해 더욱 앉아서 쉬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나 관리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도 한다.

게다가 삼성전자판매 노동자들의 하루 근무시간은 일반적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긴 9시간이다. 취업규칙에서는 노동자들이 하루 1시간 30분간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점심식사 1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30분은 관리자의 압박으로 제대로 쓰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렇게 긴 근무시간과 온종일 서 있는 자세,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는 휴식시간으로 인해 일상적 피로와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되는 한편, 늦은 퇴근시간으로 인해 저녁 식사 시간과 수면 돌입 시간이 함께 늦어지면서 소화계질환이나 대사질환은 물론 온갖 수면 장애에도 노출되고 있었다.

 

노동자가 주체로 근무조건 설정해야

설문조사에서 노동자들은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근무시간 단축’을 꼽았다. 이외에도 ‘고과제도 개선 또는 폐지’ ‘무분별한 업무 지시 해소’ ‘부당한 고객 요구에 대한 회사의 보호 조치’를 주된 해결과제로 언급했다. 노동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근무환경을 구축하는 한편, 감정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함을 드러내는 결과다. 또한 주관식 응답과 면접조사에서 현장 노동자와 적극적인 소통, 매장의 상황을 반영한 인력 충원들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거론됐다.

삼성전자판매의 주된 사업인 가전 소매업은 온라인을 통한 가전 구매율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존속을 위협받는 사업 영역이다. 사측은 단기적인 시각으로 당장의 매출 실적만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대신, 모두가 함께 사는 방향으로 중장기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근무조건이나 실적 목표를 설정하는 하향식 구조에서 벗어나 노동자, 그리고 노조가 주체가 돼 근무조건을 스스로 결정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삼성전자판매 노동실태의 심각함을 노조 차원에서는 노동자 건강권을 중요한 의제로 삼는 계기로, 사측은 노동자와의 불통을 중단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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