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진구 소재 어린이집의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 교사가 담당한 교실(왼쪽 출입구 쪽). 가해자인 원장이 사용하는 사무실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피해자 교사측 제공>

어린이집 원장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았지만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가 고용노동부의 행정처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구제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지적이 인다. 법조계는 노동부의 적극적인 제재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5년간 폭언·모욕에 협박, 학부모에 소문

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지난해 8월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S어린이집 원장 A씨에 직장내 괴롭힘에 따른 과태료 250만원을 부과했다. ‘어린이집’이라는 직장이 ‘지옥’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김민혜(가명·52)씨는 2018년 3월 어린이집에 경력직 간호조무사(보건교사)로 입사했다. 김씨는 이미 4곳의 어린이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숙련 노동자였다. 그런데 입사 7개월 무렵부터 원장 A씨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괴롭힘은 폭언부터 시작됐다. 김씨가 노동청에 진정하며 제출한 소명서에 따르면 2019년 초 승인을 받아 어린이집 열쇠를 복사했는데도 A씨는 김씨에게 공개적으로 “도둑X”라고 쏘아붙이며 약 2시간 동안 고성을 질렀다. 이를 보다 못한 조리사가 말릴 때까지 계속됐다. 어린이집이 이사했던 2021년 6월에는 김씨가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식사를 챙겨주려고 하자 A씨는 전화로 “아저씨들 전화번호를 따서 놀아나려고 한다”며 조롱했다.

공개적인 모욕은 계속됐다. A씨는 동료들 앞에서 “학부모 민원도 해결 못 하는 무능력한 교사”라고 망신을 줬다. 사적 심부름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절도범’으로도 몰렸다. 2022년 8월 김씨가 남은 옥수수 간식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2달이 지나 폐기하자 A씨는 절도라며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A씨는 “경찰에 조사받으러 가야 돼” “공범인지 아닌지 경찰에 한번 신고해 볼까”라며 협박했다. 김씨 남편이 이 같은 사실을 듣고 “잘 좀 대해달라”고 어린이집에 전화했지만, A씨는 교사들이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보건교사인데’ 사적 심부름에 경위서 반복

김씨는 원장의 사적 심부름도 도맡았다. 매일 오전 원장실에 커피와 보리차를 떠 놔야 했고 점심식사 때는 식판을 원장실까지 배달했다. A씨는 보건교사인 김씨에게 사무보조 업무를 맡기고, 음식 조리까지 시켰다. 게다가 A씨에게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를 뚫게 하고, 원장이 들어야 할 사이버교육까지 대신 수강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부 매뉴얼이 정한 ‘근로계약 체결시 명시한 업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지속적인 괴롭힘은 인사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2018년 3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총 다섯 차례나 간호사와 보육교사(담임)를 번갈아 가며 맡았다. 특히 학기 시작된 이후 담임교사가 교체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도 어린이집은 보직 변경을 강행했다. 반복적인 경위서 작성 역시 김씨의 숨통을 옥죄었다. A씨는 ‘가래떡을 먹은 이유’ ‘망치질을 한 이유’ ‘옥수수를 절도한 이유’ 등을 들어 2021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10여 차례 경위서를 작성케 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2022년 10월 서울노동청 동부지청에 진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이어졌다. 김씨는 A씨가 교사들에게 허위로 사실확인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자필로 작성한 문구를 동료교사에게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A씨는 교사들에게 일일이 ‘사실확인서를 써 줬냐’는 취지로 추궁하고 다녔다고 김씨측은 주장했다. 김씨를 대리한 심준형 공인노무사(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는 “실제 사실확인서를 써 준 교사가 전화해서 ‘공개되지 않을 줄 알고 확인서를 썼는데 보복당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직장내 괴롭힘 인정에도 “소송 결과 따라 조치”

노동청 조사는 지지부진했다. 약 10개월의 조사 끝에 지난해 8월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됐다. 김씨가 조리사로부터 옥수수 3개를 받아 폐기한 부분에 대해 노동청은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결여한 직장내 괴롭힘 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잦은 경위서 반복 작성과 김씨 남편이 어린이집에 전화했다는 이유로 1~3년 전 일에 대해 다시 경위서를 쓰게 한 부분도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다고 봤다. 이후 A씨는 업무지시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김씨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울장애를 얻어 2022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근로복지공단에서 최초요양이 인정됐다. 하지만 통원치료를 받는 탓에 어린이집에서 원장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1층 원장실과 마주하는 교실에서 근무하면서 동료들에게 지시하는 내용을 들어야만 했다. 교실에 달린 CCTV를 통해 김씨 업무를 원장이 지켜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달에 들어서야 김씨는 1층 0세반에서 3층 1세반 담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온전한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서울 광진구의 위탁업체인 조계종 대각회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김씨측은 지적한다. 원장 A씨는 과태료 부과 이후 지난해 10월 서울동부지법에 대형로펌을 선임해 과태료부과취소 소송을 냈다. 대각회는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치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대각회는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어 어린이집 직장내 괴롭힘 사안을 안건으로 논의했다. 대각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송 결과에 따라 원장 교체나 폐원 등 선택지를 놓고 결정할 것”이라며 “김씨를 집에서 쉬게끔 하는 등의 조치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서울 광진구 소재 어린이집 보건교사가 원장의 지시로 하수구를 청소하는 모습. <피해자 교사측 제공>
▲ 서울 광진구 소재 어린이집 보건교사가 원장의 지시로 하수구를 청소하는 모습. <피해자 교사측 제공>


가해자 징계 없이 피해자만 ‘분리’ 요구

1심 결론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김씨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동부지청 관계자는 “과태료 부과로 사건 처리 결과는 끝났고 현재 다른 건으로 처리 중”이라며 “과태료 재판은 노동청 손을 떠났기 때문에 법원에서 판단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광진구청 역시 “사건 파악 중인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노동부의 사업주에 대한 행정처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소송 결론이 날 때까지 어린이집 운영 위탁업체가 가해자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며 “노동청이 가해자 징계조치 미이행에 대해 조사하고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청은 지난 4일 대각회에 분리조치를 시행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장 A씨는 본지의 여러 차례 입장 질의에도 답변을 피했다. A씨는 “본 기관은 영유아 심신을 보호하고 건전하게 교육해 건강한 사회구성을 육성함으로써 영유아 및 가정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보도 자제를 거듭 요청했다.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조치가 없는 동안 피해자 김씨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김씨는 “원장이 가해자인데 왜 원장에 대한 조치는 없고, 피해자에게만 쉬라고 하거나 다른 어린이집 전보를 권유하는지 모르겠다”며 분개했다. 특히 원장의 진정 어린 사과를 원했다. 김씨는 울먹이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원장은 직장내 괴롭힘 조사 과정에서 업무 외적인 가정사나 개인사까지 답변서에 담아 제출해 너무 괴로웠어요. 계속 직장에서 마주치는 상황에서 위탁업체가 손 놓은 사이 실질적인 구제 조치는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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