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자유기고가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이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과격하게 친일파 정부라 비난하기도 하고, 신자유주의 정부라 비판하기도 하는 등 각각의 입장에 따라 백가쟁명식의 논의가 펼쳐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부의 행태를 보고 판단하자면, 이 정부는 한국인의 ‘생애주기’를 바꾸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의도가 집약돼 나타난 게 바로 3대 개혁과제인 ‘교육개혁·노동개혁·연금개혁’이다.

이 각각의 개혁은 모두 특정한 생애주기상의 문제들에 대응된다. 예컨대 대학입학 이전의 한국인에게 교육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도 드물 것이다. 대학입학 이후의 한국인에게는 부동산 문제 등을 제외한다면 노동문제와 같이 밀접하게 다가오는 문제도 많지 않다. 이 노동문제의 연장에 바로 노후계획을 담보할 연금문제가 있으니, 3대 개혁만으로도 이미 한국인의 생애주기 거의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는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자본·노동력 등의 무제한적인 이동을 전제로 중국·인도 등의 값싼 노동력과 유럽·미국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러시아 등의 값싸고 질 좋은 원료를 결합해 전 세계 곳곳에 값싼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해 왔다. 그런 값싼 상품들에 기초해 안정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던 게 1991년 이래 2022년까지 약 30여년 간의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미중 대립,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 곡물 같은 식재료 가격의 등귀, 기후위기, 부동산 자산 폭등 등의 복합적인 상황변화가 나타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질적인 전환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저렴한 노동력 수급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라 해도 출산율이 과거와 같이 높지 않다. 이 부분에 있어 한국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다른 사회들 또한 자본주의 발전 수준과 상관없이 세계화에 따른 생활 수준 향상, 여성의 사회 진출 증대 등 여러 변화로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보편화하고 있다. 그 결과 1960년 4.7명을 기록하던 전 세계 출산율은 2020년 현재 2.3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변화를 이 글에서는 ‘임금노예제에서 임금농노제로의 이행’이라 요약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세계는 노동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만이 생존할 수 있다. 줄어드는 인구를 상쇄할 생산성 혁신은 노동력을 어떻게 보다 잘 조직할 수 있는가, 달리 표현하자면 누가 더 ‘경영’을 잘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경영은 과거와 같이 수동적인 태도의 노동자만으로는 어렵다. 노동자 자체가 보다 많은 자율성을 발휘하는, ‘경영하는 노동자’가 될 때 비로소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영하는 노동자’가 보편화된 단계를 ‘임금농노제’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생애주기 개조는 분명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노사법치주의’와 같은 괴랄한 조어를 내세우며 화물연대 같은 노동조합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킬러문항’을 없애 교육계의 ‘이권카르텔’을 제거하겠다며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이제는 의대증원을 내세우며 의사집단을 ‘기득권’으로 몰아 공격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총선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수가 체계 개선과 전공의에 의존적인 병원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의사들의 주장이 비합리적이라 보기 어려운데도, 직역단체의 자율성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의 강경대응을 일삼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과연 이 정부가 자신들이 내세운 개혁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생애주기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결정들을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직역단체들을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행한다면, 그 과정에서 증대된 비용은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비용축소의 정치가 필요한 때 비용증대의 정치를 행하고 있는 한국이 출산율 저하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임금노예제가 임금농노제로 변화하는 이 시점에 비용축소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지 진보정당이 화급히 응답해야 한다.

자유기고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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