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으로 벌였던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산재 추정의 원칙’과 ‘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도입 등이 산재 부정수급자 증가, 산재기금 부실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일명 '나이롱환자'와 이들 덕에 수익을 올리는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과 공단이 한통속이 돼 산재보험기금이 줄줄 새고 있다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된 감사다.

감사 발표 결과 떠들썩했던 나이롱환자-병원-공단의 카르텔이 밝혀진 것은 없었다. 대신 ‘산재카르텔 의심 정황’이라며 노무법인의 위법 사례를 들었다. 산재브로커(사무장) 개입이 의심되는 일부 노무법인이 의료법을 위반해 환자를 특정병원에 유인하고 산재보상금의 최대 30%까지 과도하게 수임료를 수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고 결과에 따라 엄중 조치하겠다는 계획은 수긍이 간다. 오히려 이 문제는 새로울 것도 없고 아주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져 왔으나 정부가 눈감아 왔던, 진작에 대응하고 제도를 정비했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여기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산재노동자다. 그런데도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며 마치 환자도 한통속이 돼 산재가 아닌 것을 산재로 인정받은 듯한 암시를 주고, 마치 산재환자들이 대단히 부정한 집단인 양 몰아가는 것은 문제다. 위법한 노무법인을 통하더라도 산재로 인정되는 환자는 현 제도에서 인정될 만하니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당연히 인정돼야 하는데 성의 없는 노무법인을 만나는 바람에 손해를 입는 사례가 안타깝다. 노동부는 공인노무사 제도 전반을 살펴 보완이 필요하다면 개선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제대로 하길 바란다.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산재가 과도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쉽고 빠르게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감사결과 발표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감사에서 문제점이 밝혀지지도 않았던 ‘추정의 원칙’에 대한 정비와 일명 나이롱환자 통제를 위한 ‘표준요양기간’ 필요성을 내세운 것이다. 근골격계 업무상 질병의 추정의 원칙은 신체 각 부위의 부담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진 직종을 정리해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업무상질병 처리 기간을 단축하자는 제도다. 이미 수없이 조사됐고 회사마다 작업방식에 거의 차이가 없는 조선소의 용접공, 건설업의 형틀목공과 같은 직종에 대해 굳이 똑같은 현장조사를 수행해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자는 합리적인 취지에서 도입됐다. 다만, 2022년 기준 전체 근골격계질환 신청(1만2천491건) 중 단지 3.7%만이 추정의 원칙으로 처리가 돼 기대보다는 너무 적게 적용이 돼 왔다. 이런 실정인데도 어이없게 산재 부정수급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감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도마에 오른 것이다. 감사 결과 결국 추정의 원칙으로 인한 부정수급 사례는 전혀 적발하지 못했으나 고용노동부는 ‘법적 위임의 정도가 불명확하다’며 정비하겠다고 나섰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추정의 원칙을 반대하는 재계의 입장을 들어줄 요량이었던가 의심스럽다. 장기간의 업무상 질병 처리 기간 때문에 수많은 산재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추정의 원칙 포함해 업무상질병 신속 처리를 위한 노력은 훨씬 확대돼야 한다.

‘표준요양기간’ 제도화는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가 전체 요양환자의 절반 수준이고 건강보험에 비해 요양기간이 길다며 제기됐다. 진단명이 같더라도 질병의 심각성이나 그에 따른 치료경과는 환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에 상병별로 일률적인 요양기간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요양기간이 장기화된 진짜 이유는 표준요양기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산재요양제도 개선방안연구(2010)에서 분석했듯이 산재환자들은 중증도가 높은 데다 요양 과정에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원직장 복귀 준비가 덜 돼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요양 종결이 쉽지 않다. 표준요양기간이 아니라 어느 병원에서든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양질의 표준 치료 지침을 만들고 작업복귀와 작업장 개선에 힘쓸 일이다.

산재보험제도에 개선해야 할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미한 수준의 부정수급을 잡아 내는 것이나 산재 결정과 요양을 더 까다롭게 하는 게 아니다. 절차는 더 빠르고 간단하게, 치료와 재활은 충분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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