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밖에 떠돌 일 많은 나는 방수 신발을 사랑한다. 어릴 적부터 ‘메이커’를 동경했던 나는 그중에서도 무슨 텍스라는 이름의 기능성 소재라면 껌벅 넘어간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든든한 것이다. 그러니 신발장이 터져 나간다. 통장이 텅 비어간다. 언젠가 멀리 사는 늙은 엄마 아빠에게도 꼭 필요할 것 같아 사 드리려는데, 극구 싫다 하신다. 고무신이면, 목 높은 장화면 끄떡없다고, 너 밥이나 잘 챙겨 먹고 다니라며 되레 화를 내신다. 속이 터진다. “벚꽃보다 이게 더 낫네” 국회 옆 윤중로 벚나무길에서 주차관리 일 하던 늙은 노동자가 스마트폰 들어 눈꽃 사진을 담다가 한마디 한다. 출근길엔 발이 푹푹 빠졌다면서, 눈 세상 얘기에 열을 올린다. 맞장구가 적절했던지, 젖은 목장갑 벗어 쩍쩍 갈라져 아프다는 손가락 끝 얘기까지 술술이다. 어쩜, 늙은 우리 아빠 손이랑 똑같더라. 로션 좀 바르시라는 잔소리를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낡아 헤진 신발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랬다. 비닐 덮어 겨우 물을 막은 그 모양을 보고서도 별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라고, 꾸벅 인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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