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홍준표 기자>

동료 직원의 비위행위 신고로 4개월 넘게 ‘특별감사’를 받다가 적응장애를 앓은 공공기관 노동자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다만 감사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생겼다는 주장에 대해선 감사가 ‘충격적인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업무와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다.

PTSD·적응장애 진단, 요양 불승인에 소송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단독(최선재 판사)은 정부 출연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의 부설 연구소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직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 23일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의 발단은 2018년 3월께 조직개편으로 A씨가 팀장에서 팀원으로 보직이 변경되며 시작됐다. 그러나 조직개편 이후에도 사실상 A씨는 팀장 역할을 수행하며 그해 12월 열리는 수학 관련 행사 관련 준비를 도맡았다.

이 무렵 새로 입사한 직원 B씨로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 A씨측에 따르면 B씨는 업무 자료를 나머지 팀원들과만 공유했다. 나아가 A씨가 행사 준비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다른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제출했다.

결국 A씨는 특별감사를 받게 됐다. 연구소는 제보가 접수된 2019년 1월부터 약 4개월 보름 정도 실시했다. A씨는 특별감사로 인해 수면장애가 발생하고 감사만 떠올려도 눈물이 흘렀다. 병원에 찾은 결과 PTSD와 ‘정신병적 증상이 있는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산재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적응장애’ 증상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불승인했다. 공단은 “과도하고 강압적인 감사로 볼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과거 불안장애 등 진료기록을 고려하면 개인적 취약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원 ‘적응장애’ 인정 “제보 무혐의, 억울함 느꼈을 것”

A씨는 공단 판정에 불복해 2021년 12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적응장애와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지만, PTSD는 부정했다. 최 판사는 “감사 전후에 걸쳐 장기간 직장 내 갈등 상황, 감사대상자로서의 스트레스, 감사 결과 및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PTSD를 일으킬 만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주요 우울장애, 적응장애의 발병 원인은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제보 내용이 ‘갑질과 청렴의무 위반’으로 중대한 내용인데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최 판사는 “제보한 B씨도 감사대상이 될 만한 제보가 있었는데도 공익제보자로 취급돼 감사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고가 느꼈을 억울함이 더욱 컸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 감정의 역시 “감사가 주요우울장애의 원인이 되거나 경과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소견을 냈다.

다만 법원은 PTSD와 관련해선 최 판사는 적합한 진단명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최 판사는 “감사 특성상 대상자는 상당한 정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감사 녹음파일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임상옥 변호사는 “감사가 적법하더라도 여전히 상병 발생 당시 구체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일부 상병 발생과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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