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경호처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당해다. 지난 1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 학위수여식에서 ‘R&D예산 복원’을 외치던 졸업생을 대통령 경호원들이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고 나간 사건 때문이다.

해당 졸업생인 신민기씨를 비롯해 카이스트 구성원들은 23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진정인은 피해자의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진정에는 카이스트 동문, 학생, 교직원 등 카이스트 구성원 1천136명이 참여했다.

“직권남용, 불법체포·감금,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아”
동일·유사사건 재발에 “윤 대통령 부작위에 의한 방조”

진정서에 따르면 당시 경호원들은 신씨가 준비한 천으로 만든 배너(현수막)를 뺏고 그의 입을 틀어막고 쓰러뜨린 뒤 사지를 들어 밖으로 쫓아냈다. 이어 카이스트 별실에 감금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뒤 경찰서에 강제 인계했다. 특히 피해자의 평생 한 번뿐인 본인의 졸업식에 끝까지 참석하지 못하게 해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당시 피해자는 경호 대상자인 대통령과 수십 미터 이상 원거리에서 배너를 들고 육성으로 항의하고 있었기에 대통령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대통령경호법이 발동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너 탈취, 물리적 제압, 입을 막는 행위는 대통령경호법 18조(직권남용 금지 등)와 형법 125조(폭행·가혹행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2조2항(집단폭행), 형법 260조1항(폭행)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이와 함께 형법 124조(불법체포·불법감금)와 276조1항(체포·감금)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피진정인은 피해자를 업무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연행했다고 주장하나, 피해자가 사람의 자유의지를 제압할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기에 업무방해죄로 볼 근거가 미약하며, 피해자를 체포·감금·연행하는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경호처장의 부작위에 의한 방조라고 강조했다. 이미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에게, 지난 1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에게도 경호원들이 이른바 ‘입틀막’ 제압을 했다. 이는 대통령경호처에 대한 지휘 책임이 있는 윤 대통령과 김 경호처장을 작위범(경호인력)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민기씨 “카이스트 구성원 모두가 이 사건의 피해자”
“언제 R&D예산 삭감에 대한 연구자 목소리 들었나”

신민기씨는 기자회견에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해도 된다는 것이 미리 정해져 있는 대통령경호처 절차라면 그것을 책임져야 한 윤 대통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제가 배너를 만들어 갔다는 이유로, 정당의 직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비대위에서 “다른 목적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행태가 떠오른다”고 발언한 것과, 한덕수 총리가 지난 22일 대정부질문에서 “이분들이 얼마든지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도대체 언제 R&D예산 삭감에 대한 연구자 목소리를 들었느냐”며 “저도 AI연구자로서 초격차를 앞지르기 위한 R&D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무시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는 제가 겪은 일이 다시는 그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자리”라며 “피해자는 그 자리에 있던 충격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고 아직도 사과를 듣지 못한 카이스트 구성원 모두”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주시형 전남대 교수(산업공학과)는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와 국무총리는 대통령 경호와 관련한 규칙상 불가피한다는 취지로 답변하면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보안상 이유라는 근거로 제출하지 않았다”며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규칙을 기반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된다면 국민은 국가의 자의적인 혹은 불법적인 기본권 제한으로부터 자신의 기본권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가 윤 정부 R&D예산 삭감과 졸업식 만행 주목”
대통령실 “경호안전 확보와 질서유지 위한 정당한 조치”

2004년도 카이스트 총학생회장이었던 김혜민 더불어민주당 광명을 예비후보는 “신민기씨가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R&D예산 삭감으로 분노하던 카이스트 구성원과 대한민국 과학계가 이번에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발생한 대통령경호처의 폭행과 강제연행, 감금으로 폭발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가 지금 윤석열 정부의 R&D예산 삭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카이스트 졸업식 만행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도 R&D예산 삭감으로 도저히 젊은 연구자들이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기고가 게재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권위에 진정서를 공식 접수했다. 이에 앞서 카이스트 동문 26명은 지난 20일 대통령경호처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위반(직권남용), 감금죄, 폭행죄 등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한편 대통령실 관계자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윤 대통령과 경호처를 인권위에 진정한 것에 대해 “경호안전 확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법과 규정, 원칙에 의해 이뤄진 정당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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