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

* 이 글은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티빙 오리지널의 최근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는 장단점이 뚜렷한 드라마다. 기본 스토리 라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이재(서인국 분)가 자살에 대한 벌로 12번의 생을 부여받고 12번의 죽음을 반복한단 것. ‘자살은 가장 큰 죄악’이라는 종교계에서 흔하게 언급되는 세계관에 최근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환생 판타지가 버무려졌다.

12번의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만큼 드라마는 여러 명의 주연급 배우들과 다양한 장르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령 학교폭력의 피해자 권혁수(김강훈 분)가 등장하는 생에선 학원액션물이, 청부폭력배 이주훈(장승조 분)이 등장하는 생에선 누아르물이, 모델 장건우(이도현 분)가 등장하는 생에선 로맨스물이 전개되는 식이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12번의 생이 모두 지나고 나면 이 드라마가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오롯이 남는다. 자살하면 안 된다는 것.

다만 자살하면 가장 무서운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식의 단순한 협박에 그치진 않는다. 드라마가 설파하는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남겨진 이들이 겪는 처절한 고통 때문이다. 드라마는 최이재의 애인 이지수(고윤정 분)와 엄마(김미경 분)가 이재의 자살로 겪는 고통을 부각해서 보여준다. 남겨진 이들에게 가까운 이의 자살이 얼마나 큰 상처이자 고통인지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살 유가족들은 떠난 이에 대한 죄책감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한다. 허망한 이별에 분노하며, 동시에 자신이 잘못해서 막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허무와 절망에 잠긴다. 남겨진 이들이 겪는 이러한 혼란과 감정적 고통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작아 보이지 않는다.

이재는 “죽음은 내 고통을 끝내줄 하찮은 도구”라 생각하고 자살한다. 그러나 죽음의 신(박소담 분)은 자살한 이가 사랑했던 이들이 이승에서 겪는 지옥을 생생히 보여주며 자살은 그저 더 큰 고통의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이재는 마지막 12번째 생에서 자신의 엄마로 환생해 자신의 자살로 엄마가 겪을 마음의 지옥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이를 통해 처절한 반성과 후회에 이르고 비로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회”라고 깨닫는다.

그러나 이런 단선적 메시지는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 ‘내 사람들이 겪을 이승 지옥’을 떠올리자는 캠페인은 어느 정도 자살예방의 효과가 있을 것도 같다. 증명되지 않는 ‘저승 지옥’에 비해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법은 언필칭 자살을 사회 차원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켐의 말처럼 자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에는 반드시 그 사회적 원인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19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자살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만 숙고하는 건 게으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동 문제로 국한해서 말해 볼까. 직장갑질119 등이 주최한 국회토론회 자료집 ‘일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연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사람의 수는 404명이다. 이 같은 자살의 원인은 과로, 직장내 괴롭힘, 인사처분 등에 있다. 과로와 관련해선 이 정권 들어서 외려 연장근로 한도를 늘리겠다는 얘기뿐이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직장갑질119의 지난달 보도자료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자 중 ‘자살 생각을 했다’는 응답 비율이 정규직의 경우 14.6%였으나 비정규직의 경우 28%로 두 배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런 구조적 현실들을 뒤로 한 채, 자살하면 펼쳐진다는 지옥도만 앞세워 그저 견디라는 언설은, 그 지옥이 설령 허구가 아니라 실재일지라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공인노무사 (libero1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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