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CJ대한통운 대리점주들이 택배기사들의 쟁의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회사노조를 설립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리점주들은 자신들이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라며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 소송에 참가했지만, 정작 택배노조와의 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을 회피하기 위해 노조 설립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이들 대리점주는 쟁의행위를 한 조합원 4명을 상대로 약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지난해 5월 패소한 전력도 있다.

단체교섭 결렬에 파업, 대리점 ‘국민노조’ 설립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CJ대한통운 대리점주 A씨 등 3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리점주와 택배기사의 갈등은 A씨 등이 회사노조인 ‘국민노조’ 지회를 만들면서 촉발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 세종지회는 2021년 7월 설립 이후 조치원·신세종 대리점 점주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당시 다른 노조가 없어 지회가 단일교섭요구노조로 확정됐고, 6~7차례 단체교섭이 진행됐다. 지회는 △고용보장 △노조사무실 제공 △장시간 노동 근절 및 주 60시간 이하 근무 준수 △조합원 휴가 등 결근시 배송량은 사용자가 처리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교섭에도 협상은 결렬됐다. 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에 따라 지회는 2022년 2월 초부터 한 달간 전면파업을 실시했다. 이후에는 주말 근무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파업을 이어갔다. 이 무렵 조치원과 신세종 대리점에 국민노조 지회가 만들어졌다. 지회 설립 약 8개월 만이었다. 조치원 대리점에는 택배기사 17명이 국민노조에 가입했고, 신세종 대리점에는 점주 B씨 남편이 국민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사용자가 국민노조에 가입한 셈이다.

하지만 B씨 남편은 노동위원회에서 가입 사실을 부인했고, 대리점주 B씨는 “남편 명의로 가입했다가 문제가 될 것 같아 바로 가입을 철회했다”고 진술했다. 대리점주연합회 간부를 맡았던 세종부강 대리점의 실질 운영자인 C씨(대리점주 남편)도 국민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C씨는 각 지회를 묶은 세종지부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신세종 대리점의 국민노조에도 18명의 택배기사가 가입했다. 세종지회 조합원 15명(조치원 11명·신세종 4명)보다 많았다.

회사노조가 과반수노조로 “민주노총 잡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리점들은 ‘사용자’가 가입한 국민노조와 단체교섭도 강행했다. 대리점주들은 2022년 3월 노조 교섭요구 사실을 재공고하면서 다른 노조의 교섭요구 기간을 같은해 4월6일까지로 정했다. 하지만 지회가 교섭을 요구하지 않자 대리점주들은 “교섭기간에 파업은 불법”이라며 재교섭을 요청했다. 지회는 4월16일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대리점주들은 “교섭요구 기간 내에 서면으로 접수되지 않았다”며 국민노조를 과반수노조로 공고했다.

결국 대리점과 국민노조는 2022년 6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지회는 “노조의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를 유발했던 당일배송·당일집화 원칙 및 주 6일 근무를 명시하는 등 단체협약 체결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실제 국민노조에 가입한 택배기사는 지회 조합원에게 “국민노조가 민노(민주노총)를 잡자 이런 식으로 했다”며 “국민노조가 민주노총이 쟁의권을 행사하는 것을 우리 대리점에서 과반수가 되면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저희는 (국민노조에) 가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 중단시 설립 취소” 제안, 법원 “사용자 개입”

‘쟁의권’을 뺏긴 지회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로 향했다. 이들은 대리점주들이 △국민노조 설립 계획·주도 △택배기사들에게 국민노조 가입 권유·유도 △사용자의 입장을 대리하는 실질적인 운영자(C씨)가 국민노조 가입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노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충남지노위는 대리점주의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다만 국민노조 지회의 효력은 판단 대상이 아니라며 기각했다.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대리점주들은 2022년 12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국민노조 설립·가입 종용은 부당노동행위가 명백하다며 지회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국민노조 세종지부·지회 설립을 계획·주도하고 집배점 내 근로자들에게 국민노조 가입을 권유·유도한 행위 및 원고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C씨가 국민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해 원고들의 행위에 동참한 것은 모두 노조법(81조1항4호)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먼저 C씨는 대리점주연합회 간부를 맡으며 사측 교섭위원으로 단체교섭에 참여하고 교섭을 주도했다고 보고 점주들로부터 노사관계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아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리점주들이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노조를 설립해 쟁의행위를 저지하려는 목적이 강했다고 봤다. C씨가 “쟁의행위 중단을 조건으로 국민노조 지회 설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택배노조 충청지부장에게 제안한 부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제안은) 사용자들의 의사 결정에 따라 국민노조 지부·지회 설립이 취소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측 “사용자라면서 교섭 해태 모순”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민노조에 가입한 택배기사의 진술도 부당노동행위의 근거가 됐다. 대리점주 A씨는 택배기사에게 “(국민노조 가입에 대해) 도와 달라. 쟁의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했고, 다른 택배기사는 “대리점 사장끼리 다 살기 위해 한 거야”라고 말했다. “(국민노조 가입신청서에) 사인을 하라고 해서 사인했다” “(국민노조) 조합비를 소장(대리점주)이 낸다” 등의 발언도 나왔다. 국민노조 가입과 조합비 납부에 사측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원고들이 각 집배점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회의 노동조합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대항노조를 설립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국민노조 가입을 유도·권유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민노조 조합원들과 일부 택배기사들이 “국민노조 가입은 자발적”이라는 취지로 제출한 진술서도 대리점주들의 요청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리점주들의 ‘노조 탄압’은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 소송에서 보인 모습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송의 대리점주도 부당노동행위 재심판정에 불복,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택배노조를 대리한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본인들이 사용자라면 적극적으로 택배노조와 교섭에 임해야 마땅한데 정작 사용자로서 교섭의무를 해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회사노조까지 설립하는 것은 스스로 사용자성을 부인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내용도 사회적 합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들”이라며 “사용자가 직접 가입하고 조합비도 납부해 주겠다며 조직을 한 경우로 설립 경과도 매우 이례적인 사안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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