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산재 카르텔’을 이유로 업무상질병 인정 기준, 상병별 표준요양기간 마련 등 산재보상제도에 대한 전방위적인 손질에 나선다.

노동부는 최대 규모의 감사인원을 투입해 3개월 넘게 근로복지공단 특정감사를 진행했지만 당초 이야기했던 근로복지공단, 산재병원, 산재환자 간 ‘산재 카르텔’은 찾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새롭게 공개된 ‘부정’ 사례는 11개 노무법인이 재해자의 산재 신청을 도우려 진단·검사비를 지원하고 산재 인정시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는 불공정한 영업행위 정도다.

실체 없는 ‘산재 카르텔’ 의혹을 부풀려 산재보상제도 후퇴를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종 적발 486건 중 340건
10일 이상 일용근로자의 휴업 중 근무 사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2022~2023년 부정수급 의심사례로 신고됐거나, 감사과정에서 자체 인지한 사건 883건을 조사한 결과 55%(486건)를 부정수급 사례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부정수급 추정액은 113억 2천500만원이다.

노동부 설명에 따르면 부정수급 의심사례 486건 중 117건은 중간감사 결과 당시 확인된 사례다. 추가 확인된 369건 중 340여건은 10일 이상 일용근로자가 휴업급여를 받는 중 신고를 하지 않고 일한 사례로, 조직적인 산재 부정수급과는 거리가 멀다.

‘조 단위의 혈세’가 새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셈이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공단, 산재병원, 산재환자 간 ‘산재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산재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면서 산재 부정수급이 늘고, 산재 재정이 부실화됐다는 주장도 했다.

노동부는 국감이 끝난 뒤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한 특정감사를 시작했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특정감사에 힘을 실었다. 노동부는 특정감사 인원을 최대 규모로 늘리고, 감사 범위를 “산재승인 및 요양 업무 전반의 제도·운영상 적정성”까지 넓혔다.

장기간 특정감사에도 산재 카르텔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정부는 산재 추정의원칙 개정·산재보험의 보상 수준 축소·장기요양환자를 줄이기 위한 표준요양기간 도입 등을 방향으로 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지난 1월31일 산재보상 제도개선TF를 출범했다. 직업환경의학의와 법학·사회복지학 전문가 10여명으로 구성된 TF는 2개 분과로 구성돼 있다. 1분과에서는 소음성 난청을 포함한 추정의 원칙,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산재 처리기간 장기화 문제를 논의한다. 2분과에서는 장기요양 유인 요인 줄이고, 재활을 통한 사회복귀 유인 강화, 산재 보상수준 합리화 등을 논의한다.

“일부 부정 사례, 전체인 양 호도” 제도 불신 조장

일부 부정 사례를 전체인 양 호도하고 정부가 감사 이전에 정한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인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정부가 공개한) 사례들이 너무 극단적인 데다 당초 정부가 제기하던 산재 나이롱환자와 산재지정병원 간 카르텔은 보이지 않고 산재보상의 금전적인 수준이나 인정기준을 개악하려는 의도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산재사건에 사무장이 중심이 된 노무법인이 있다는 사실은 노동부도 다 알고 있던 문제인데 십수 년간 방치하다가 몇 개 적발해, 모든 산재 노동자나 노무사의 일인 양 과대 포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가 정책 추진 배경 설명을 위해 든 사례는 극단적인 것뿐이다. 이날 이정식 장관은 “뇌혈관질환으로 재해를 당한 사람이 현재 78세의 나이에도 월 675만원의 장해급여를 수급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며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으면 국민연금도 중복해 수급이 가능하다”며 과잉 보상 사례를 진단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정식 장관은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이 없어 주치의 판단에 따라 요양 연장 여부가 결정돼 장기요양 요인이 되고 있다”며 “목통증인 경추염좌는 건강보험 대비 치료기간이 2.5배 더 길고, 진료비는 3.7배 더 지급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가 요양이 필요하지 않는 환자에게 과도한 요양기간을 부여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협소하고 아주 예외적인 사례를 일반화하고 있다”며 “정책을 만들고 법·제도를 개선할 때는 잘못된 사례를 평균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뇌심혈관질환 재해자가 장해급여로 월 675만원을 받는다는 장관의 말을 비판한 것이다. 유 노무사는 “그정도의 장해급여를 받으려면 장해등급이 높고, 기존 소득도 높은 편이었을 것”이라며 “높은 임금을 받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던 노동자가 재해로 노동력을 일부 상실해 사회보험의 보장을 받고 있는 사례를 일반적인 부정사례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부정 사례 한 건도 없는 추정의원칙 왜 흔드나 ”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한국노총은 입장을 내고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는 지난해 산재 승인건수(14만4천965건)와 비교할 때 0.3% 수준에 불과하며, 보험급여 지출액(7조2천849억원)과 비춰봐도 극히 일부”라며 “산재 카르텔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무책임하게 던진 언행들로 그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산재환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노무법인의 과도한 수수료가 문제라면 수수료 체계를 정비하고,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국정 산재 노무사 제도를 도입할 문제이지 산재가 아닌 것을 산재로 부당하게 신청, 승인받은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감사 결과와 무관하게 재계 요구를 산재보험 제도 개편 방향으로 발표한 것”이라며 “단 한 건의 부정 사례도 없는 근골격계 추정의원칙은 산재보험의 도덕적 해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