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 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2. 6. 선고 2022가소361820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선정당사자) A는 2022년 1학기 당시 연세대학교 재학생이고, 선정자 B는 같은 학기 휴학생이다.(이하 원고들) 피고들은 서울지역 대학교의 청소ㆍ경비 등 시설 관리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산하 2008년 1월11일 설립된 연세대 분회 조합원들로, 연세대 분회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근무하는 청소·주차·경비·시설직 근로자 305명이 가입했으며, 피고 X는 분회장, 피고 Y는 부분회장이다. 이 사건 지부는 2021년 11월2일부터 2022년 2월15일까지 서울지역 13개 대학교 분회 소속 조합원들의 사용자인 16개 하청용역업체와 ‘시급 인상, 청소근로자를 위한 샤워실 설치, 정년 퇴직자 충원’을 요구하는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2022년 2월22일 서울지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했다. 서울지노위는 2022년 3월3일 제시한 권고안을 사용자 측이 거부함에 따라 2022년 3월11일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 지부는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를 가결한 후, 2022년 3월14일 ‘교내에 현수막을 게시해 요구사항을 알리고, 원청인 대학교에 항의 방문하며, 점심시간 선전전 및 학내 집회를 진행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내렸다. 피고들이 소속된 연세대 분회에서도 위 지침에 따라 2022년 3월28일부터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20~30명 내외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설물 관리업무를 총괄하는 연세대 총무팀이 있는 백양관 인근에서 피케팅 등 쟁의행위를 시작했다(이하 ‘이 사건 집회 또는 쟁의행위’). 조합원들은 쟁의행위 과정에서 요구사항이 기재된 피켓을 들고 소형 앰프를 사용해 민중가요를 틀거나 대표 발언을 했으며, 종종 구호를 외치고 꽹과리를 쳐서, 그로 인해 간혹 소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 쟁의행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2022년 5월16일 현장 소음을 측정한 결과는 63.3데시벨 전후였으며, 확성기 사용중지나 일시 보관 등 별다른 제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 관련 형사 사건의 경과

피고들은 이 사건 쟁의행위를 교내 옥외장소에서 진행하면서 집시법에 따른 사전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지 않았다. 원고 A는 2022년 5월9일 이 사건 지부를 업무방해 및 미신고 집회 주최로 인한 집시법 위반 혐의를 이유로 고소했다.

서울서대문경찰서는 ① 2022년 12월1일 업무방해 부분에 대해, “학생들에게 수인할 수 없을 정도로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실력을 행사해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송치(증거불충분, 혐의 없음) 결정을 했다. 이어 ② 2023년 5월 9일 집시법 위반 부분에 대해, “수급업체들 소속 근로자의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근로 제공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인 연세대학교 내부에서 쟁의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를 포함한 집회 참가자들이 원청 사업장인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 등에서 집회를 개최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불송치(죄가 안됨) 결정을 했다. 원고들은 이 사건 변론 과정에서 검찰에서 계속 수사 중이라는 주장을 해, 대상 판결은 4쪽에서 “(집시법 위반 부분 이외) 나머지 부분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가 계속 중인 상황이다”라고 설시했으나, 업무방해 부분 역시 2022년 12월1일 불송치돼, 이 사건과 관련된 형사 사건은 현재 모두 종결된 상황이다. 이 부분은 항소심에서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3. 대상판결의 요지

원고들은 이 사건 집회가 미신고 집회로 집시법에 위배되고, 피고들이 연세대 분회 간부들로서 위법한 쟁의행위를 주도했는데, 미신고 집회 중 소음을 일으켜 원고들의 학습권을 침해했으므로, 피고들은 원고들의 학습권을 침해한 데 대한 손해배상으로 일할 계산된 등록금 일부,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및 병원 치료비 등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집회 중 발생한 소음으로 인해 불편이 초래되는 등 면학 분위기에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된 사정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정도로 원고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대상 판결의 구체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원고들의 주장처럼 이 사건 집회가 집시법에서 정한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곧바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미신고 집회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나 형사처벌이 제한될 수 있으며, 집회 중 발생한 소음 피해가 수인한도를 넘는 정도에 이르러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는 별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② 이 사건 집회는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③ 이 사건 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의 정도가 쟁의행위를 위법하다고 판정할 정도로 중대하거나 원고들의 학습권을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해당 소음이 집회 장소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백양관 내 강의실이나 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원고들의 학습활동에 심각한 장애가 될 만큼 수인한도를 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④ 이 사건 집회는 원고 A의 수업이 이뤄진 강의실과는 상당히 이격된 장소에서 점심시간 무렵에 채 1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원고 A의 신고 이후 피고들도 학생들의 수업이나 면학 분위기에 대한 방해를 피하기 위해 학생회관 앞 계단으로 집회 장소를 옮기기도 했다. ⑤ 원고들은 단순히 피고들이 연세대 분회 간부라는 이유로 이 사건 집회에 가장 주도적이라고 주장할 뿐, 구체적으로 피고들이 어떻게 불법 쟁의행위를 주도하고 위법한 소음 발생에 기여했다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주장이나 증명이 없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이 사건은 대학교 재학생이 학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큰 주목을 받았다. 원고들은 대상판결 판결문이 나오기도 전에 즉각 항소해 ‘시대착오적 판결’이라고 맹비난했다. 대법원은 2020년 한국수자원공사 사건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 원청 사업장 내에서 쟁의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정당한 행위라고 봤으며(대법원 2015도1927), 해당 사건의 원심은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사람들에게 파업의 정당성 등에 대해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필요로 하고, 이는 헌법상 쟁의권에 본질적인 포함되는 권리”라고 봤다(대전지방법원 2014노390). 대법원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소음 등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으며(대법원 2009도840 판결), 제3자 역시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수인할 의무가 있으므로, 제3자의 권리를 “구체적·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태양”으로 이루어진 위법한 쟁의행위를 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대법원 97다1266 판결 등). 하급심 판결 역시 이 사건과 유사하게 대학생들이 노동조합의 7개월간 파업으로 인해 학습권 등을 침해받았다며 노동조합 및 간부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건에서, “쟁의행위로 인한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의 인정은 제한적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며 위 사건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기도 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06가합10716, 항소심에서 확정). 이렇듯 대상 판결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원청 사업장 내 단체행동권 행사에 대한 최근 대법원 및 하급심 판결의 취지 및 내용을 지극히 잘 반영해, ‘시대에 부합하는’ 결론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청소노동자의 노동의 결과를 누리는 대학생 역시 이들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일정 부분 수인할 의무가 있다. 원고의 주장대로 피고들이 사업장 내 옥외장소에서 미신고 집회를 했더라도, 정당한 쟁의행위의 경우 그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나 형사처벌이 제한될 수 있다. 이점을 지적한 부분 역시 의미가 있다.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두고 학습권과 노동권의 대결 구도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학습권은 교수님 말씀을 제외한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막을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보면 기본권의 유사(부진정) 충돌일 뿐, 기본권의 충돌이 아니다. 즉, 두 권리를 두고 이익을 형량하거나 규범 조화적으로 따져볼 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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