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매일노동뉴스

김민지(가명·31)씨는 ㄱ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사무직으로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일했다. 계약은 통상 1년 단위로 체결돼 갱신됐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시점 2년이 도래할 때마다 형식적인 공개채용 절차를 진행했다. 5년 내내 업무는 끊김 없이 이뤄졌다. 하지만 민지씨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길 원한다는 말에 돌아온 건 기간제 노동자이기 때문에 출산휴가만 부여할 수 있고, 육아휴직은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신청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민지씨는 지난해 3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의정부지청에 육아휴직 미부여, 육아기근로시간단축 신청 반려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진정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계약직 노동자는 육아휴직 사용 못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계약직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육아휴직 제도는 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기간제·파견 노동자도 사용할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19조는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해당 사업장에서 6개월 미만 일한 노동자가 신청한 경우는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기간제 노동자 또는 파견 노동자의 육아휴직 기간은 사용기간, 근로자파견기간에서 제외된다. 가령 2년의 기간제 계약을 맺은 노동자의 계약 종료 예정일이 올해 12월31일인데, 올해 2월부터 내년 1월까지 12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고 해서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진 않는다는 의미다. 기간제 근로계약 연장은 사업주와 노동자 합의가 있으면 연장되고, 그렇지 않다면 당초 계약종료일인 12월31일 계약이 종료된다. 하지만 이 경우 기간제 노동자는 1월까지 육아휴직 급여를 받는다. 계약종료로 인해 재직 요건을 기간제 노동자가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사후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신청했는데, 거절됐다”
동료 증언에도 ‘법 위반 없음’ 판단 배경은?

민지씨의 경우 2020년과 2021년 육아휴직을 사용을 요청했지만, 관리자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민지씨는 육아휴직 신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노동청에 ㄱ지자체의 육아휴직 미부여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지씨의 주장을 뒷받침해줄만한 동료의 증언도 소용 없었다. 동료는 “담당 공무원이 진정인에게 기간제라서 출산휴가만 부여할 수 있고, 육아휴직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사실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청은 민지씨가 신청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행정종결(법 위반 없음)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령 11조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려는 노동자가 휴직개시예정일의 30일 전까지 신청서에 신청인의 성명·생년월일, 육아휴직 대상의 영유아 성명·생년월이, 휴직개시예정일 등의 정보를 적어 사업주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육아휴직 부여를 두고 사업장과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이에 대해 노동청에 문제제기할 생각이 있다면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단 의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할 때 전자문서를 포함해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두고 있고 육아휴직도 마찬가지로 해석한다”며 “만약에 구두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거부 한다면 근로자는 신청서를 써서 제출하면 된다. 사업장에서는 (육아휴직을) 예외 없이 무조건 허용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청서를 제출한 상대방은 인사권한이 있는 당사자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4년 일했는데, 근무기간 6개월 미충족?

2년의 계약기간을 마친 뒤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다시 채용됐다면 기간제 노동자가 육아휴직 혹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신청 요건인 6개월 이상 근무를 채웠다고 볼 수 있을까도 쟁점이다.

노동청은 민지씨가 2023년 1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신청에 ㄱ지자체가 반려한 사안에 대해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기존 근로관계를 단절하고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ㄱ지자체에서 계속근로기간이 6개월이 되지 않는다”며 “육아기근로시간단축허용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행정종결 했다.

민지씨가 ㄱ지자체에서 일하는 5년 동안 체결한 계약은 모두 5번이다. 2019년 1월 최초 계약 체결 후 1년이 지난 2020년에는 종전과 동일한 내용으로 1년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고, 2021년에는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2021년 1월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기간제법은 2년 이상 사용한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1년 단위 계약-재계약,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신규채용을 반복한 것이다. 2023년 1월부터 3월까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민지씨가 신청할 때는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재고용된 직후로, 노동청은 민지씨를 6개월 미만 근로자로 판단한 것이다.

민지씨는 단절 없이 계속해 근로를 제공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일한 일을, 같은 사업장에서 4년 넘게 했지만 근무기간이 ‘리셋’된 것이다.

이경민 공인노무사(민 노무사무소)는 “(민지씨의 경우) 형식적으로 채용절차를 진행했기 때문에 계속근로를 한 것이 맞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노무사는 “보통 근로자는 육아휴직 사용하기 전에 사전에 사업주에 묻고, 안 된다고 하면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는다”며 “사용자가 신청서가 들어온 게 없었다고 주장해버리면 근로자가 미부여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했다는 답변을 녹음하거나,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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