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지난해 5월 재해자에게 발병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는 자료들을 첨부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서를 제출했다. 상담 기록, 진료기록, 임상심리 검사결과, 진단서 등을 통해 재해자가 진단받은 정신질환이 분명하게 확인되고, 이를 발병시키기 충분한 직장내 괴롭힘 등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과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메시지, 진술 등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했다. 그리고 재해자에게 기타 업무 외 스트레스 요인, 개인적인 취약성 등은 없었다.

그런데 같은해 8월 공단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9조에 따라 정신질환 특진의료기관에 특별진찰을 의뢰하면서, 재해자의 요양급여 신청은 산재보험법의 목적인 ‘신속한 보상’이 무색하게 제자리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요양급여 신청 이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에 실시된 특별진찰은 정신질환의 발병 경위를 다시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재해자는 직장내 괴롭힘 등을 반추해야 하는 부담, 반복되는 심리적 고통, 증상의 악화 등을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다. 특별진찰을 위해 특진의료기관을 찾은 날, 괜찮다던 재해자는 그 기억에 가까워질수록 힘겨워했고, 그런 재해자 옆에서 특별진찰의 취지, 절차 등을 설명해야 하는 대리인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후 특별진찰이 언제 마무리되고, 공단은 언제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그 심의를 의뢰할지 기약이 없다. 재해자는 현재까지 공단으로부터 아무런 통지도 받지 못한 상태다.

특별진찰 처리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 전까지 병가, 휴직 등을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의 현실은 제때 안정적인 치료를 받기 어렵게 만든다.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에 더해 길어진 처리 기간으로 인한 걱정, 불안감,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사업장 복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은 그 정신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오랜 기간이 지나 겨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악화된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요양기간, 휴업급여 등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할 우려도 있다.

정신질환 특별진찰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고, 공단은 지난해 9월19일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을 개정했다. 이번 개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은 ① 특진의료기관을 ‘소속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의료기관’에서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임상심리사 2급 이상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산재보험 의료기관 또는 공단 소속병원’으로 변경했다.

② “임상심리 검사결과가 없거나 제출된 검사결과가 특진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경우가 아닌 경우 특별진찰 의뢰한다. 다만 요양급여 신청 재해자를 지속적으로 진찰하고 진료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및 정신건강임상심리사 2급 이상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있는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상심리 검사결과지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진찰을 생략함”이라고 해, 정신질환 특별진찰을 생략할 수 있는 내용을 단서로 추가했다. 요양급여 신청 재해자를 지속적으로 진찰하고 진료했던 경우라 함은 3개월 이상 4회 이상 진료(입원, 통원 불문)한 경우를 말한다.

이번 개정을 통해 정신질환의 특별진찰 및 요양급여 신청 처리 기간의 장기화 등 문제가 얼마나 해소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공단은 이를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 종국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특별진찰 의뢰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한 노동자들이 고립되지 않고, 신속하고 당당하게 치료받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공단의 마땅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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