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만 서른에 맞이하는 새해를 기념해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이제까지는 건강보험공단의 일반건강검진만 받아왔다. ‘나라에서 하라고 하는 기본적인 검진이니까 하긴 해야지’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할 때만 건강검진의 의미를 느꼈고, 그 외엔 결과가 예상되는 아주 기본적인 검사만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이와 예산, 필요성을 고려한 정부의 결정이라는 걸 알지만 기본적인 검사만 하니 건강검진을 받아도 안심이 되진 않았다.

이번에 위 · 대장 내시경과 여러 초음파 검사 등이 포함된 검진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인력관리를 위해 건강검진을 복지로 제공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만약 내가 이런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회사에 다닌다면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과 애사심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검진은 일하는 회사에 따라 편차가 크다. 어떤 신문 기사는 양극화된 직장인 건강검진을 ‘공단파와 병원파’로 설명하기도 했다. 대기업 노동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수십만 원대의 종합건강검진을 받지만, 그 외의 노동자는 대개 건강보험공단의 일반건강검진만 받는다. 사내 복지에 신경을 쓰는 기업은 직원의 종합건강검진은 물론 배우자나 부모, 가족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고용노동부의 ‘기업체노동비용조사 결과(2023)’에 따르면, 300명 미만 기업체의 복지비용은 300명 이상의 3분의 1 수준(34.1%)이었는데, 특히 격차가 큰 항목 중엔 건강·보건비용(300명 이상 사업장 대비 14.7%)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간의 건강검진 복지 격차 문제도 있다. ‘대한석탄공사의 직영 노동자는 종합건강검진을 받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는 기본적인 건강검진만 받는다’는 문제가 재작년에 불거졌고, 지난해부터 하청업체 노동자에게도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건강검진을 지원하면서 차별이 시정됐다.

건강검진 참여율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안전보건공단의 ‘근로자의 건강검진 실태조사 연구(2019)’에 따르면 5명 미만 사업장의 건강검진 참여율은 79.3%이다. 300명 이상 사업장의 검진 참여율인 97.7%에 비해 18.4% 차이로 크게 낮은 상황이다. 건강검진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1위는 검진 시간 미부여(34.1%)였다. 건강검진에 걸리는 시간을 유급휴가 등 회사가 부담하는 형태가 아닌 무급휴가나 휴일과 연차 등 노동자가 부담하는 비율도 높다(34.6%). 또한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건강검진 만족도도 낮다.

반면 건강검진 지원에 대한 노동자 욕구는 높다. 노동부의 ‘중소기업 맞춤형 복지모델 구축을 위한 정책연구(2019)’를 보면 종합건강검진 및 의료비 지원 등의 경비 지원성 성격의 제도들의 요구가 높다.

건강검진에 대한 수요는 대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모두에게 있지만 대기업 노동자와 달리 이들은 건강검진을 ‘내돈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다)’해야 한다. 큰돈이 나가니 건강검진을 뒤로 미루고 미뤄 적절한 검진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공공상생연대기금, 녹색병원을 비롯해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와 취약계층 노동자를 위한 건강검진 지원을 하는 기관들이 있다. 공제회의 사업을 통해 프리랜서 노동자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의 건강을 신경을 쓰는 사회 조직이 있다’ ‘나의 일에 대해 존중해주는 곳이 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연대체와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검사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일반건강검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검진에 실효성을 느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건강검진이 실질적인 검사로 이루어져 검진 참여자가 안심을 느껴야 지금처럼 개별 회사의 재량에 건강검진을 맡겨 차등을 양산하는 게 줄여질 수 있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건강검진 기회가 불평등한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이어야 프리랜서, 퇴직자, 실직자의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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