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범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국내 취업이 가능한 이주노동자 비자는 전문직(C-4, E-1~7)과 단순직(H-2, E-8~10)으로 구분된다. 이중 논란이 되는 비자는 고용허가제라고 불리는 E-9(비전문취업) 비자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사업장에 비전문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용하는 제도로 2004년부터 시행됐다.

고용허가제가 적용되는 업종은 중소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매우 제한적이다. 이렇게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2017~2020년 매년 평균 5만6천명 정도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급격히 증가했다. 2022년 6만9천명이더니 2023년 12만명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심지어 올해는 16만5천명으로 역대급이 될 전망이다. 또한 관광서비스업 등 업종도 확대될 것 같다. 특히 석유화학·발전소 등 국가 중요산업시설로 간주돼 이주노동자 고용이 허용되지 않던 플랜트건설 현장도 빗장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늘리기 정책은 인력난을 겪던 조선업에서 시작됐다.

국내 조선업은 오랜 침체를 겪다가 최근 호황을 맞았다. 제2의 조선업 부흥기로 평가될 정도다. 하지만 이런 호황에도 업체들은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경기 때 조선업에서 근무하던 숙련 인력들이 건설업 등 다른 업종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 보고서에 따르면 옛 조선업 노동자들은 주로 삼성 및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과 원자력 발전소 등 대규모 공사현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건설현장은 조선현장보다 평균 임금이 30~40% 높다. 비슷한 일을 하는데 임금과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건설업을 두고 굳이 열악한 조선업으로 돌아갈 이들은 없다.

조선업의 인력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고용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 확대였다. 조선업을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보다 이주노동자로 대체하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땜빵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외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정책이다. 또한 노동계를 배제한 채 ‘정부-원청업체-하청업체’ 중심의 조선업 상생협약식을 체결해 보여주기식 쇼를 남발했다.

조선업에 취업한 이주노동자 상당수는 처음 계약과 다른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한 이주노동자는 월평균 270만원과 연장·야간·휴일근로시 50% 가산임금을 받기로 했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도 월 노동시간 209시간을 기준으로 기본급과 고정수당을 합쳐 월평균 270만원 정도를 받기로 본국에서 계약서를 체결한 뒤 국내에 들어왔다. 그러나 조선업체들은 말을 바꿨다. 포괄임금제가 적용된 월 245만원을 지급했다. 숙박비와 식비 등이 제하면 이주노동자 손에 남는 임금은 월 200만원 남짓이었다. 그야말로 최저임금 정도에 불과했다.

현장에서 버젓이 이중계약서가 작성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관리·감독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조선업에서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이주노동자 도입을 여러 업종으로 확대하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매년 12월18일은 세계이주민의 날이다. 전 세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UN이 2000년에 제정했다. ‘이주노동자 권리 협약’을 보면 UN은 협약 당사국에게 이주노동자가 신분상 불이익과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국내에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지 20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른 만큼 법·제도가 진화하고 발전해야 하는데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던 전국 40여개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삭감해 폐지했다. 또한 저임금 가사 이주노동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사람이나 인격체가 아니라 값싸게 이용하는 상품이나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사용자가 노동자를 취급했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대한민국은 18세기 사고를 지닌 윤석열 정부의 이주노동자 노동정책에 휘둘리고 있다.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wadr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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