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님이 전화하셨습니다.’ 지난 8일 원고들의 대표 권○○씨가 전화했다는 문자메시지를 읽으면서 나는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라고 중얼거렸다. 3년여 동안 진행해 온 사건에 대해 법원 판결이 선고되는 날이었다. 선고일에는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결과만 확인받곤 하는데 이날도 그랬다. 당사자인 원고들은 법정에서 직접 재판장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그런데 이 부재 중 전화 메시지 말고는 판결 결과를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없었다. 결과가 잘 나왔으면 분명히 원고들이든 사무실에서든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하면서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이날 개인 사정으로 사무실에 출근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사무실 직원에게 판결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전화를 받은 이○○ 차장은 “원고 승”이라고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권○○씨와 내가 했던 말이다. 전자를 권씨가 말하고 후자를 내가 말했다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수고했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원고 승’ 판결이 나오게 되면, 통상적으로 원고들이 사건을 대리한 내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하지만 이날은 이렇게 달랐다. 원고 대표로 그동안 그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나는 잘 알기에 ‘원고 승’이라는 결과 앞에서 그의 수고가 고마웠던 것이다.

2. 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험난했다. KB국민은행 임금피크제는 2008년부터 시행됐다. 그 적용을 받았던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시해서 이미 법원에서 국민은행 임금피크제는 무효가 아니라는 판결들이 나와 있던 상태였다. 확정판결까지 있었다. 임금피크제 무효를 주장하며 삭감된 임금 지급을 청구한 사건에서 이보다 더 큰 난관이 있을까.

이렇게 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온 임금피크제 사건에 관해서 아무리 당사자들이 소송해 달라고 해도 사건을 수임해서 소송하겠다는 변호사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수임했다. 2016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을 앞두고 국민은행은 기존 임금피크제 기준을 변경했던 것인데, 변경된 기준의 임금피크제는 별도로 판단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고 봤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이렇게 주장하는 소장을 작성·제출해서 서울남부지법에서 3년 넘게 재판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판결 선고를 앞둔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에서 원고들과 같이 2016년 이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직원들 사건에 관해 국민은행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아니라며 ‘원고 패’ 판결을 선고했다. 당연히 피고 사측은 이를 내세워 동일하게 판결해야 한다고 참고서면을 통해서 거듭해서 주장하고 나왔다. 법원 확정판결에 서울중앙지법 노동전담부 판결까지 나온 상태였으니 우리 사건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법원에서 재판을 해 본 사람이라면, 특히 변호사라면 너무도 잘 알 것이다.

3. 낙담했다.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기다리지 말고 판결 선고를 해야 했는데, 판결 선고를 미룬 재판부의 태도로 볼 때 더더욱 결과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낙담하고 절망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가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나온 뒤에도 예정했던 일자에 판결 선고를 하지 않고 선고일자를 몇 차례 변경통지를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판결대로 판결할 것이면 바로 판결 선고하면 될 일이었다. 이런 기대는 소송대리인인 나보다 오히려 원고 노동자들이 높아서 원고들 대표인 권○○씨를 통해서 내게 전달됐다. 당시 나는 ‘재판부가 고심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국민은행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다’며 원고 노동자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분명히 기대보다는 낙담이 타당해 보였다. 크게 기대했다가 ‘원고 패’에 원고들이 크게 실망하고 절망하지 않을까 나는 걱정이 됐다. 이렇게 판결 선고를 앞두고서 낙담하면서 걱정하던 때에 원고 대표는 피고 참고서면 반박 자료를 보내주면서 내게 참고서면을 제출해 줄 것을 수시로 재촉했다. 피고 참고서면 내용이 이미 해 왔던 주장을 반복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판결과 같이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라서 굳이 참고서면 제출을 통해서 반박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했다. 판결 선고를 앞두고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참고서면을 제출했다. 마지막 서면은 이번 판결 선고를 일주일 앞두고서였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4. 먼저 피고는 참고서면을 통해서 선행판결과 같이 판결하지 않을 거라면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서 반박해야 했다. 변론을 종결하면서 주장과 입증을 다했노라고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진술해서 판결 선고일까지 정했던 것이고,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이 사건에서 새로운 주장을 피고가 참고서면을 통해서 하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3년 반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원고 135명 중 98명이 재직자였던 것이 현재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직한 상태에서 판결 선고만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고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판결 결과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봤지만, 원고들은 달랐다. 원고들은 하루라도 빨리 판결이 선고되기를 바랐다. 원고 대표를 통해서 변론 재개되지 않고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 자료를 보내왔고, 나는 위와 같이 참고서면에 변론 재개를 해서는 안 되는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며 피고 주장을 반박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참고서면 내용은 국민은행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다. 피고가 참고서면을 통해서 거듭해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아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왔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는 것이었다. 2022년 5월 대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고령자고용촉진법상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의 판단기준에 관해서 판결했다. 해당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임금 삭감 등 불이익 정도, 불이익을 보상하는 대상조치, 임금피크제로 확보된 재원이 도입 목적에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가지고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고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국민은행 임금피크제는 이러한 대법원 판단기준에 따르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로서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던 것이고, 이에 대해서 피고 사측은 참고서면을 통해서 마지막까지 임금 삭감 등 불이익과 대상조치에 관한 주장을 반복했던 것이다.

국민은행에서 임금피크제는 기존 임금 수준의 50% 정도를 삭감해 지급하는 것이라서 불이익이 큰 것인데, 그럼에도 피고 사측은 정년 2년 연장에 각종 복리후생 혜택 등까지 보태면 불이익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선행 사건에서 법원은 이미 그런 취지로 판결했던 것이다. 노동자의 법정 정년이 60세로 간주하는 개정 고령자고용촉진법이 시행된 2016년 이후에는, 그 법정 정년과 같이 60세 정년을 보장하는 것인데도 이를 두고서 과연 정년을 2년 연장해 주는 임금피크제라고 볼 것인지도 나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법원은 그것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쏟아 내고 있다.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설사 정년연장형에 해당한다고 해도 국민은행 임금피크제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되지 않고서 기존 정년 58세에 퇴직할 경우에 지급받은 임금총액에 비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고서 정년 60세에 퇴직하게 될 경우에 지급받게 되는 임금총액이 많다고 볼 수도 없을 정도다. 노동자는 2년을 무임금으로 근무하는 셈이다. 그리고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이 별도 직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대로 일반직원으로서 일반 직무를 수행하고, 임금 삭감에 상응하는 근로시간 단축도 없었다. 도대체가 불이익을 보상하는 대상조치를 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이렇게 내가 참고서면에 했던 주장을 옮기다 보니 그때 감정까지 되살아난다. 이런 식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부당하다는 법적 분노가 솟는다. 어디 국민은행뿐인가.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 정년을 60세로 하면서 시행되는 임금피크제는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다르지 않다. 임금을 삭감하기 위한 것이지 정년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법적 정년을 정년으로 보장하면서 하는 임금피크제는 아무리 변명해도 임금을 삭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촉진법 위반이라고 법적으로 분노를 해야 마땅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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