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공부문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제도 폐지 후 공공부문 노사의 산별교섭으로 최소업무 범위와 유지율을 정하되, 합의가 불발하면 가칭 필수유지업무위원회를 꾸려 결정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파업 사전 차단, 세계 유례 없는 제도

12일 ‘법무법인 여는’과 한국노동법학회가 함께 연구해 내놓은 ‘필수업무유지율 산정방식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해 파업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에 명시된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공익사업장 노동자의 쟁의권을 제약하는 직권중재제도가 국내·외 비판에 직면하자 이를 폐지하고 2008년 도입했다. 철도·병원·통신사업 등을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해당 사업별로 필수유지업무를 열거해 파업을 하더라도 일정 업무율을 지키도록 했다. 노조법 시행령에는 △철도 차량 운전 업무 △항공기 조종 업무 △항공기 객실승무 업무 등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필수유지업무를 열거하고 있다. 파업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업무 대부분이 포함된 탓에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사전에 제약하는 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익 보호를 목적으로 공공부문 업무의 일정 업무율을 유지하려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적지 않지만, 우리처럼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세세하게 규정해 파업을 사전에 금지하는 방식은 찾아볼 수 없다.

보고서에는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제도 운용 실태를 살펴보고 업종별 개선방안, 공통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해외사례도 소개했다.

한국가스공사의 필수유지업무제는 가스공급량 100% 유지를 바탕으로 설계돼 있다. 공급량 100%를 유지하기 위해 파업 시에도 설비 운전 인원을 100% 유지해야 한다는 식이다. 파업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통신사업자인 LG유플러스는 대체근로 허용범위인 100분의 50을 ‘업무 단위’ 파업참가자 절반이 아니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파업참가자 50%로 정하고 있다. 대체인력을 특정 업무에 투입하면 파업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항공운수사업에서는 2005년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 이후 2016년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이 있기까지 11년간 파업이 단 한 건도 없었다. 국제선 운항률 80%, 제주노선 70%, 내륙노선 50%를 유지해야 해서 파업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파업 제한→파업 약화→쟁의권 박탈’ 악순환

국제노동기구(ILO)는 쟁의권을 제한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필수업무(필수서비스)와 최소업무(최소서비스)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필수업무는 파업을 금지하는 제도의 정당성과 파업 시 유지해야 할 최소한 업무를 인정한다. 얼핏 필수유지업무 제도와 유사한 것 같지만 내용은 뜯어보면 전혀 다르다. 파업을 금지하는 필수업무는 “생명, 개인적 안전, 대중의 전체 또는 일부의 보건에 위해를 초래하는 서비스”라고 정의하면서 그 범위를 매우 엄격하게 설정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제약하는 철도, 도시철도, 항공사 조종, 석유, 은행 등의 업무는 포함하지 않는다. 최소업무도 파업을 무력화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필수공익사업과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폐지하고 최소업무유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회적 대화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입법으로 필수서비스를 규율하지 않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이고 있고, 관련 법이 있는 나라에서도 최소유지업무는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정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연구팀은 보고서를 통해 “공공부문 산별 노사가 산별교섭에서 단체협약으로 각 산업별 파업 시 유지해야 하는 최소서비스의 범위와 유지율, 세부 절차를 정하는 시스템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현 필수유지업무 제도에서는 필수공익사업 종류·필수유지업무 개념만 빼고 삭제하고 산업별 노사공동위원회에서 구체적인 필수유지업무의 범위·유지율·운영절차를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3자가 나서는 그림도 내놨다. 국회 산하의 필수유지업무위원회를 설치해 논의한다.

연구팀은 “단체행동권을 사전적으로 제한하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파업의 영향력을 극도로 약화시키며, 이는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박탈로 이어지고 있다”며 “제도 도입 16년이 경과한 상태에서 필수유지업무 제도에 따른 필수유지업무의 적정 수준을 확인하고, 과연 현행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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