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운(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명절은 누구에게나 평등한가?

먼저 답하면 명절은 평등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뒤틀려서 명절이라는 시간을 평등하게 제공받지 못할 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성은 일방적으로 더 많은 가사노동을 강요받는다. 다른 누군가는 연휴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나가 일하기도 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이런 상황은 널려 있다.

10여 년 전 방영한 TV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에서 명절에 계약직인 주인공 장그래는 식용유 선물세트를, 같은 일터 정규직은 스팸 선물세트를 받았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 한 계약직 직원이 “어유 됐어, 계약직은 그나마도 안 나오는 데가 부지기수야”라고 말했는데, 그나마 장그래가 있던 회사가 대기업이기에 받은 것이다. 중소·영세기업은 빈손으로 명절을 지내는 노동자가 많다. 10여 년 전 드라마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없다. 지난해 4월 직장갑질119가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83.5%가 ‘(업체에서) 명절 선물을 다르게 지급한다’고 응답했다. 즐거워야 하는 명절마저도 비정규직은 명절 선물과 상여금으로 자기 위치를 강제로 재확인받는다. 직접 말은 하지는 않지만 “너는 비정규직이잖아”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다.

엊그제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본 공고문에서도 명절에 차별받는 노동자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생활폐기물 수거를 명절 연휴인 토요일과 일요일은 하지 않고, 금요일과 월요일은 그대로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이뤄지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과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4일 연휴에도 불구하고 결국 2일은 일해야 하는 현실이다. 물론 내가 사는 지역은 2일만 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하면서 지역별 차이가 난다면 이대로도 뒤틀려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명절이라서 차별이 특히 더 일어나는 게 아니다. 차별은 뒤틀린 우리 사회 속에서 일상처럼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터에서 고용형태를 두고 일어나는 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때로는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타난다. 임금, 식대, 교통비(유류비), 휴가 사용, 수당, 노동시간 등 여러 영역에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다. 그리고 때로 그 차별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데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식비나 교통비를 지원받지 못하거나 정규직보다 적게 받기도 한다. 백번 양보해서 업무 차이로 인해 임금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더라도, 같은 일터에서 같은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자에게 식비에 차이를 둔다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것은 이외에도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사라졌다가 또 다른 방식으로 차별은 재생산된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일터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다양한 형태로 “너는 비정규직이야”라는 명명을 끝없이 확인받고 강요받는다. 식품공장에서 위생모 턱끈 색깔, 작업복 품질, 로고 만으로도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구분할 수 있다. 제조업 현장 곳곳에서 작업복 디자인과 안전화와 안전모 같은 복장만 보고서도 고용형태를 단번에 알 정도로 회사는 차별한다. 치사하기 이를 데 없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차별받으며, 명절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그 차별을 체감하기도 한다. 끝없이 “너는 비정규직이잖아”라고 주입하면서 스스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게끔 만들고 있다. 이제 곧 명절이다. 연휴 기간으로 그냥 보내지 말고, 연휴를 보내면서 우리 같이 만나는 사람과 함께 노동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kihghd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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