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겨울철 건설노동자 목숨을 위협하는 갈탄은,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콘크리트 양생작업에 사용된다. 건설노조가 질식사고 위험이 높은 갈탄의 사용금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얼마 전 서울 체감온도가 무려 영하 21.7도를 기록해 모스크바보다 추웠다고 한다. 이런 날씨에 바깥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겐 살을 에는 추위뿐 아니라 걱정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갈탄으로 인한 질식사고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출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공포감은 막연하지 않다. 고용노동부 발표에서도 최근 겨울철에 발생한 건설현장 질식사고는 갈탄, 숯탄 등을 사용해 콘크리트 보온양생을 하던 중 다량의 일산화탄소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정부가 갈탄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해 필요한 된 조사·연구를 하거나,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에서는 갈탄과 관련한 연구 자료는 찾아볼 수 없고, 현장에 배포하는 예방 매뉴얼 몇 종만 있을 뿐이다. 조사하지 않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되고, 해결책 마련도 요원해진다.

건설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직접 노출돼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며, 위험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실현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갈탄에 대해 조사와 연구조차 하지 않는 현실은 노동부가 나서서 건설노동자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알권리 보장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목격했다. 바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가습기살균제 시민재해 모두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른 채 일해야 했고, 생활해야 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한혜경씨는 한 인터뷰에서 “라인에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에 추웠어요. 얼굴이 너무 시리면 리플로우기(열처리기계)에 코를 댔어요. 동료들이랑 떡을 리플로우기에 구워서 먹은 적도 있어요. 안전교육을 했으면 그렇게 했겠냐고요”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현장이 워낙 춥다 보니 고온의 리플로우기 설비가 따뜻하게 느껴진 것인데, 이 장치에 쓰이는 솔더크림은 전자기판에 효율적으로 납땜을 하기 위해 납으로 만들어진 크림이다. 발암 가능성 물질로 분류되는 납이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노출됐다. 난방시설을 갖춘 휴게실이 부족해 건설노동자들이 몸을 데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갈탄을 난로용으로 사용한다는 상황과 너무 닮았다. 가습기살균제 역시 비슷하다. 이미 정부에 등록돼 독성 정보가 파악된 물질이었지만, 피부 접촉만을 고려한 정보들이었고 흡입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는 것이 문제로 지목됐다. 결국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노동환경은 일하는 사람 스스로 위험을 택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 역시 건설노동자들의 위험을 높인다. 채홍필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동절기가 되면 건설노조에서 갈탄 위험 포스터를 현장에 붙이고, 팀장들에게도 갈탄에 대해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주지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노조가 있는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광득 건설노조 경인건설지부 사무국장 역시 지난해 인천지역 중대재해의 절반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이유에 대해 “노동조합이 탄압받는 상황은 건설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고, 대놓고 불법을 저질러도 건설노동자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노동조합 탄압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마저 불가능하게 만든다.

중단되지 않는 갈탄 사용으로 인한 건설노동자들의 죽음은 노동자가 작업환경에 대해 정확히 알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안전 대책을 요구하지 말 것을 강요받는 건설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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