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동성애자 佛 총리 됐다’ 지난달 10일 조선일보가 15면(국제면)에 얼굴 사진과 함께 보도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새 총리 관련 기사 제목이다. 프랑스 총리는 국민이 투표로 뽑는 선출직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그의 실력을 단언할 순 없다.

내가 놀란 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 34살에 불과하다는 거다. 더 놀라운 건 별 이력도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파격 총리 인선이 아니라 정부 대변인과 공공회계 장관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밝힌 첫 프랑스 총리가 됐다.

이보다 앞서 2021년 2월엔 미국 역사상 첫 공개 성소수자 장관인 피터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이 백악관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도 2021년 2월5일 19면에 사진기사로 보도했다. 그로부터 반년 뒤 부티지지 장관은 쌍둥이 아이를 입양했다. 한국일보는 이 소식을 2021년 9월6일 23면에 ‘美 첫 성소수자 장관 부티지지 “아빠 됐어요” 입양 사진 공개’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엔 부티지지 장관과 그의 동성 파트너가 아이를 한 명씩 안은 채 환하게 웃는 사진도 실렸다. 그도 프랑스 새 총리처럼 임명 당시 39살에 불과했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기사 어디에도 두 사람이 성소수자라서 문제 있다는 내용은 없다. 외국엔 성소수자가 총리가 돼도 언론은 시비 걸기보다는 축하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유독 우리 언론만 사사건건 시비다. 우리 언론의 성소수자 보도는 1995년쯤 시작돼 2000년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 때 크게 늘었다가, 2010년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를 소재로 쓴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자 폭발했다.

1990~2012년 7월까지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한겨레 세 신문의 동성애 기사를 분석한 ‘동성애 관련 사회갈등 보도에 대한 프레이밍 분석’ 연구논문에 따르면 2010년 조선일보 동성애 관련 기사는 전년 대비 약 100배 증가했다.

세 신문이 성소수자를 보도하면서 등장시킨 인터뷰이 직업은 큰 차이를 보였다. 국민일보는 ‘종교계 인사’가 절반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한겨레는 동성애자 본인을 포함한 인권단체가 38.4%로 가장 많았다. 조선일보는 정치인이 27.1%로 가장 많았다. 모든 걸 ‘정치’로 치환하는 건 조선일보의 오랜 습관이다.

연구진은 성소수자를 폭력이나 섹스와 연결해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선정성 프레임’ 빈도도 조사했는데, 세 신문 가운데 조선일보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연구진은 “빈 교실에서 발가벗고” “알몸 상태에서” 등 주제와 무관하게 불필요한 독자의 관음증을 유발하는 선정적 기사는 조선일보 19.1%로 가장 많았고, 국민일보 3.2%, 한겨레 2.0%에 그쳤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조선일보는 동성애를 신문사의 이념적 잣대보다는 선정적 기사 작성으로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매일은 지난해 7월10일 6면(사회면)에 울산 동구에 있는 공공도서관이 퀴어, 비혼을 주제로 한 강연을 계획해 기독교계와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다며 이를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울산신문엔 유럽 첫 성소수자 국가원수인 라트비아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을 인용 보도할 땐 성소수자를 담담하게 보도하다가도 국내로 옮겨오면 거품을 문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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