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말 잇 수다 기획단

포털사이트 커뮤니티 게시글 모니터링 업무를 하는 콘텐츠 모더레이터 A씨는 4년 전 출산 직후 고열·오한에 시달리다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방광염에서 요로감염으로 번진 데다 균이 폐까지 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아이를 보며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글이 밀릴까 두려웠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시간이 걸리니 참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 같은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정해진 시간 내에 해당 커뮤니티에 올라온 모든 글을 검토한 뒤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하지 못한 일은 고스란히 추가노동이 되지만 프리랜서 도급계약을 맺은 탓에 추가수당은 별도로 지급받지 못한다. 부득이하게 쉬어야 할 땐 다른 시간대 근무자에게 일을 부탁하고 그 시간만큼을 본인이 다른 날 대신 일해야 했다. A씨는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고, 유산한 당일에도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A씨 같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야간·휴일수당은 물론이고 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프리랜서뿐만 아니라 배달라이더·대리운전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와 방문점검원·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다. 이들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 모여 집담회를 열고 노동실태를 증언했다.

대기시간·헛걸음 ‘공짜노동’
고객 위협, 정신적 고통은 홀로 감내

플랫폼 노동자는 건당 임금을 받는 탓에 ‘공짜노동’에 내몰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리운전기사는 출발지에 도착해서 고객을 기다리는 시간, 이미 도착한 상태에서 고객의 사정으로 대리운전을 취소한 경우 이를 보상받을 수 없다. 라이더의 경우 콜 취소로 인한 보상체계를 일방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통상 3천원 주던 것을 갑자기 1천500원으로 바꾸는 식인데, 개정된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어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감정노동자 보호조치를 포함한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이창배 대리운전노조 교육국장은 “한 고객이 처음 목적지에서 2~3킬로미터를 더 가 달라고 요구해서 곤란하다고 정중하게 얘기했는데 욕설을 퍼부으며 강압적인 태도로 차를 세우라고 했다”며 “일반도로에 차를 세우고 운행을 종료했는데 며칠 뒤 회사쪽에서 주정차단속구역에 차를 세웠다며 계정을 막아 버린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은 업무특성상 트라우마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예상치 못한 수위의 음란물이나 잔혹한 사건의 영상·이미지에 수시로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3년차 콘텐츠 모더레이터 B씨는 “모자이크가 되지 않은 신림역 살인사건 영상을 보게 됐는데 이후로도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며 “욕설과 비방은 익숙한 일이고 잔혹한 사건의 동영상·이미지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교섭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 제도 개선 필요

노조가 있는 곳은 단체교섭을 통해 ‘공짜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거나 임신·출산 등 일을 불가피하게 그만 둬야 할 경우 휴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방문점검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는 2022년 임단협을 통해 차량 유류비·보험금 등으로 월평균 1만4천원 지급, 고객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헛걸음’ 지원으로 월평균 1만5천원 지급을 이끌어 냈다. 재능교육 노사는 2021년 단협을 통해 임신·출산·육아와 질병, 부상 등 사유로 인해 최대 1년까지 휴업할 수 있도록 했다. 업무 중 부상에 의한 휴업시 생계비 보조에 대한 근거도 마련했다.

노사 교섭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이들은 “고용보험의 경우 실업급여 외에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전후휴직, 직업훈련 같은 혜택에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배제돼 있다”며 차별 없이 사회보험을 동일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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