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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파쇄와 운송을 담당하던 지입차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산재보험법(5조2호)이 정한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의미하므로, 산재에 따른 요양급여를 정부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다. ‘무늬만’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한 지입차주가 여러 차례 법원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추세다.

‘직영기사’와 같은 업무, 공단은 불승인

3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문서파쇄업체 지입차주 A(54)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서만 3년2개월간 심리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A씨는 2012년 6월 8톤 트럭을 지입차주로부터 사들여 문서파쇄업체인 B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C사와 지입계약을 맺고 문서파쇄와 운송을 담당했다. A씨는 서비스 요금 명목으로 매달 약 4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5년이 흐른 2017년 7월 서울 강남에 한 사무실의 문서를 파쇄하던 중 파쇄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왼쪽 손가락 일부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자 A씨는 B사에 소속돼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며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회사에 소속된 ‘직영기사’와 업무가 거의 유사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당시 회사에는 직영기사 3명과 A씨를 포함한 지입차주 3명이 있었다. 지방출장은 주로 지입차주들이 담당했다.

실제 직영기사와 지입차주 업무는 다르지 않았다. A씨는 주 5일을 원칙으로 매일 오전 8시20분에 출근해 오후 6시30분에 퇴근했다. 출퇴근 시간은 회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었고, 회사가 지정하는 날짜에 쉬어야 했다. A씨가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체운행을 시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트럭에 설치한 파쇄장비는 계약이 종료되면 반환해야 했다.

업무지시도 받았다. A씨는 매일 퇴근 전에 회사 담당자로부터 다음날 업무내용을 배정받아 지정된 장소에서 문서파쇄와 운송 업무를 했고, 퇴근 전에 차량을 차고지에 입고시켰다. 매일 거래처·작업량·작업시간·주유대금 등을 적은 작업일지를 작성해 매달 말 회사의 확인을 받았다. 또 거래처의 거래명세표와 파쇄완료증명서도 제출해야 했다. 트럭에는 B사 상호와 광고가 도색됐고, A씨 명함에도 B사가 기재돼 있었다.

하급심 뒤집은 대법원 “사업주 외관만 갖춰”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며 불승인했고, A씨는 2019년 1월 소송을 냈다. 1·2심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A씨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출퇴근 시간과 작업일지 작성 등은 위탁계약의 내용에 포함된다”며 “지정된 복장을 착용하고 차량에 광고물을 부착한 점도 대외적 이미지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입차주 운행이 불가능하면 회사가 임시기사를 투입해 운행할 수 있었고, 거래처 신뢰를 위해 업무규제가 불가피하다고도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A씨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문서파쇄 업무는 B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에 해당하고, 원고가 업무를 수행한 기간은 5년에 이르렀으며 사고가 없었다면 원고는 상당 기간 더 업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파쇄장비가 회사 소유인 점 △고정된 대가를 받으며 회사가 주유대금을 부담한 점 △다른 목적으로 차량을 사용할 수 없는 점 등도 근로자성 징표로 봤다. 대법원은 “원고가 B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고, 사업자등록을 하는 등 사업주로서의 외관을 갖춘 채 부가가치세를 납부했으나 이러한 사정들은 노무제공의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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