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때 엄마 품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아이는 기어코 훌쩍 자라 엄마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촘촘했던 그 곳이 휑하니 비었을 때, 흰머리 가리기가 버거워질 때, 비로소 아이는 어른이 된다. 몸 조심해라, 잘 챙겨먹어야 한다, 크는 내내 들었던 온갖 잔소리를 하루 또 부쩍 작은 엄마에게 돌려준다. 이에 질세라 늙어 작은 엄마는 눈이 오면, 날이 춥거든 전화해 조심, 또 조심이라고 당부한다. 네, 네. 미끄러운 퇴근길을 뒤뚱 걸어 집에 들면 갓 지은 밥에서 김이 오른다. 자글자글 끓인 김치찌개에 한 공기 뚝딱 비우면 엄마 생각이 불쑥. 이번 김장 김치가 그렇게 맛있다고 전화하는데, 조심, 또 조심 엄마 묵은 잔소리가 어김없다.

저기 길에 선 용균이 엄마가 사람 틈에서 작다. 그러나 엄마 목소리가 오래도록 길 위에 높았다. 옆자리 선 변호사보다 법률 지식은 없어도, 그 옆 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보다 연설은 부족해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꾹꾹 눌러담은 말이 나날이 단단하고 우렁차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자는 당연한 말은, 엄마 목소리 빌려 비로소 세상에 널리 퍼졌다. 울림통이 작지 않다. 그간 흘린 눈물이 적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엄마는 오늘도 할 말이 적지 않아 길에 서 입김을 뿜는다. 엄마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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