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흡한 반도메밀순례단장

강원도 평창 용평에 ‘옛날공이메밀국수’가 있다.

메밀은 검은색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다. 삼각뿔의 한 가운데에 씨눈(16%)이 들어 있다.

씨눈을 둘러싼 씨젖 부분을 '속가루층(내분층)'이라 하는데 1번 가루로 나온다. 흰색이다. 씨젖은 메밀 전체에서 53%를 차지하는데 씨눈과 함께 1번 가루로 빠져나가고 남은 씨젖 부분을 갈아 2번 가루(중층분)를 만든다. 옅은 누런색이다. 마지막이 속껍질가루(12%)인데 3번 가루(표층분)로 나온다. 선도가 좋은 녹색을 띤다. 일본의 소바(=메밀)는 1, 2, 3번 가루를 구분해서 면을 만든다. 우리는 1, 2, 3번 가루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섞어 전층분으로 메밀가루를 뽑는다. 주인장은 여기에 메밀의 4번 겉껍질가루(19%, 검은 색)를 섞어서 메밀면을 완성한 듯하다. 메밀을 겉껍질째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국수를 먹던 시절의 거친 메밀면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짙은 갈색을 띤 95.35% 메밀면이다. 메밀 함량을 소수점 두 자리까지 밝힌 이유가 궁금하다.

메밀국수의 다른 이름인 막국수의 ‘막’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메밀의 예민한 성질을 반영하여 주문과 동시에 지금, 바로 반죽하여 뽑아낸 국수. 제분 기술이 낮아 거칠게 갈아낸 가루로 만든 국수. 조리의 조악성, 즉 대충 막 만들어 먹는 국수. 현재는 제분 기술이 고도화한 상태다. 메밀은 혈관에 좋은 루틴(비타민P)성분과 저열량으로 웰빙음식의 품격을 누리고 있다. 주인장 권혁철씨가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로 명명하고 메밀 함량을 밝힌 이유는 막국수의 ‘막’이 지닌 마구, 대충 만들어 먹는 국수라는 부정 의미에 절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공이는 국수 틀에 들어가는 반죽 덩어리. 반(2분의 1)공이, 한 공이가 있다. 한 공이(6인분)를 주문하면 사리(국수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 16개가 채반에 담겨 나온다. 동치미를 담은 주전자와 달걀 지단, 오이채 그리고 찬으로 무김치, 열무김치가 곁들여 나온다. 열무김치 대신 갓김치가 나올 때도 있다. 평창 갓으로 담근 갓김치는 겨울에서 늦은 봄까지 맛볼 수 있다. 메밀국수를 제공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하늘의 별만큼 다양한 취향과 개성을 발휘해 자기 만의 메밀국수를 창조하는 기쁨을 누린다.

주인장의 ‘맛있게 드시는 법’은 단지 참조 사항. 동치미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다. 고랭지 ‘무’로 담근 동치미는 맑고 시원하다. 간장과 들기름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 양념간장, 겨자, 식초, 설탕, 김가루, 들깨가루 섞고 들기름 두르고 무김치와 열무김치를 얹어 골동면의 전통을 먹는다. 짠맛, 단맛, 감칠맛, 신맛, 쓴맛의 향연을 즐긴다. 순서는 스스로 택한다. ‘골동면’은 여러 재료가 섞인 비빔국수를 뜻한다. 19세기 중반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 기록하고 있다. 평창 용평의 테루아(Terroir:기후와 토양, 공기, 물, 햇살, 바람이 키워낸 작물과 손이 만들어 내는 지역 음식 고유의 정체성과 풍미)를 반영한 메밀국수로 손색없다. 공존이 빚어내는 담백한 맛 속 아우름의 멋을 누리고 싶을 때 먼 길 떠나 찾아가는 곳이다.

한반도메밀순례단장 (pshstar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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