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진 공인노무사 (퀴어동네 대표)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겪은 일이 직장내 괴롭힘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속 시원히 해결되는 사례가 드물어 대답 또한 속 시원하게 하기 힘들고 법의 실효성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없었다면 직장의 무수한 을들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을까. 노동자의 머리 길이가 귀를 덮으면 공장 경비가 바리캉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던 시절을 지나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 여성은 화장을 안 하면 회사에 출근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외모 갑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불필요하게 외모를 지적하는 것에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도 매뉴얼에 ‘옷차림 지적, 뚱뚱하다는 외모 관련 지적이나 농담’이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의 무수한 을들에게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주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보면, 아직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언어가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일본은 우리 근로기준법과 비슷한 내용으로 직장내 괴롭힘(power harrassment·파워하라) 금지에 관한 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괴롭힘을 후생노동성(우리의 고용노동부 해당)이 관련 지침에 명시해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과 가까운 단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괴롭힘이다.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구별짓기, 배제, 낙인, 혐오 발언 같은 괴롭힘은 대놓고 하는 차별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차별 수단이 된다. 그 때문에 성소수자와 같이 차별받는 집단은 괴롭힘에도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성소수자가 직장에서 받는 괴롭힘을 밖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없는 두 가지 큰 장벽을 만난다. 첫 번째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직장에 공공연히 알려지는 것이다. 2차 피해 등 큰 각오가 필요하다. 두 번째 장벽은 내가 받은 괴롭힘이 왜 괴롭힘인지 회사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외모 갑질처럼 단순하지 않다. 아웃팅이나 성별표현 강요, 성 정체성 떠보기, 혐오표현 등 성소수자만의 경험과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기존의 괴롭힘 유형에 포섭되기 힘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말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포기가 계속되면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성소수자가 직장에서 겪는 일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해석이 필요한 직장내 괴롭힘 판단시 현장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행정청의 지침이다. 그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괴롭힘 유형이나 판단 기준을 담겨 있다면 장벽의 높이가 많이 낮아지지 않을까? 일본 후생노동성의 지침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자의 성적 지향·성 정체성에 대해서 양해를 얻지 않고 폭로하는 것’ 즉 아웃팅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또 ‘성적 지향·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차별적 언행이나 괴롭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안내하며 예방에도 힘쓰고 있다. 표준 취업규칙에도 ‘성적 지향·성 정체성에 관한 언동 등 다양한 직장내 괴롭힘으로 다른 노동자의 취업환경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안내한다.

일전에 쿠팡에서 일하던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에 대한 아웃팅 위협을 가했던 직장 상사를 신고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어렵게 용기 내 첫 번째 장벽을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장벽은 넘지 못했다. 해당 사건은 끝내 회사와 노동부에서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노동자는 퇴사했다고 전해 들었다. 아웃팅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일본과 같은 기준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차별적 괴롭힘을 차별 유형 중 하나로 보고 이를 고용영역에서 규율하는 내용이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안에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일부 기독교 세력의 반대로 20년째 표류 중이다. 언제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나. 차별적 괴롭힘은 차별이면서 동시에 괴롭힘이다. 노동부가 차별적 괴롭힘에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집단과 경우를 지침에 설명하고 규율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입법 미비의 공백을 메우고 현장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변화를 기대한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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