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공공운수노조 4기 임원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의외의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당초 가장 열세라고 평가됐던 후보조가 당선하는 결과가 나와서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58·사진)은 자신감과 깊은 고민이 함께한다. 기대와 우려 속에 탄생한 집행부·공공운수노조에 대한 사소한 평가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그의 말에서는 현장성과 소통, 그리고 투쟁이라는 세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엄 위원장은 2007~2009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지낸 뒤 차량 정비를 하며 ‘현장’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회관에서 엄 위원장을 만나 당선 소감과 전망을 들었다.

- 공공운수노조 통합 이후 첫 3파전 선거를 치렀다.
“낙선한 두 분의 위원장 후보는 저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다. 공공운수노조 안에서 임원 활동 경력이 길기도 하고 노조에 대한 이해도 높다. 결과적으로 우리 팀이 당선돼 많은 이들이 놀랐고 당사자인 우리도 놀랐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투쟁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조합원의 바람에 부응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투쟁이 필연적인 시기라고 생각한다. 정권의 공세도 그렇고 공공운수노조가 정부 권력과 밀접한 단위이기 때문에 앞장서서 투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다.”

- 각 후보조의 득표수 차이가 미묘한 수준이었다. ‘통합’도 중요한 과제일 텐데.
“통합은 어느 조직에나 중요하다. 공공운수노조는 규모도 크고 다양한 작업장에 많은 노동자가 있다 보니 더욱 그렇다. 조직이나 사람을 배치하는 문제뿐 아니라 조합원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하면 통합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조직 운영은 집행부의 생각을 설득하고 조합원에게 동의를 받는 과정이라고 본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동의를 구하려고 한다. 정해진 일정이나 사업계획도 있지만 길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1년차에는 현장 순회도 수시로 할 예정이고 정책대회를 고민하고 있다. 그때까지 노조의 발전 전망이나 핵심 과제를 공유하면서 토론을 통해 통합과 단결을 이뤄 내고 싶다.”

“대정부 교섭 압박할 힘, 그동안 부족했다”

- 당장 총선이다.
“총선 대응과 관련해서는 아직 모든 전략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민주노총도 그렇고 구체적인 대응을 준비할 예정이다. 기존에 총연맹이나 노조에서 진행했던 총선 대응처럼 지지 후보를 정하고 정책협약을 맺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선 이후 첫 정기국회까지를 내다보면서 입법 쟁취 목표와 적극 연동하는 입체적인 총선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윤석열 정권은 우리 노동자들이나 공공운수노조가 동의할 수 없는 정권이다. 진행해 온 정책의 대부분이 공공노동자의 노동권을 억압하고 후퇴시키는 정책이었다. 그에 맞선 투쟁계획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정권 퇴진 운동의 경우 총선 이후에 급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노동자를 탄압해 살아남은 정권은 없고 우리는 정권 퇴진 투쟁의 경험이 있다. 박근혜 퇴진 때도 철도노동자, 공공부문 파업이 퇴진 투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 화물연대본부·철도노조 등 굵직한 투쟁이 공공운수노조에서 벌어졌다. 지난 투쟁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대응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권과 공공성을 후퇴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화물연대본부와 철도노조 등이 파업투쟁을 통해 힘차게 맞서 왔다. 전체 민주노조운동 차원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정치권력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시켜야 했는데 다소 아쉬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노조 역시 지지세력을 더 많이 모으고 산별 차원의 투쟁으로 이끌어 내는 데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정치권력을 바꿔 낼 만한 투쟁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공공운수노조는 사회공공성, 대정부 교섭 등의 의제를 강조해 왔다.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같은 구호였는데 새 집행부는 어떤 구호와 의제를 고민하고 있나.
“공공운수노조이기 때문에 공공성과 노동권은 변하지 않는 가치이자 의제다. 다만 기존 슬로건은 다소 막연했다는 평가도 있다. 조합원들은 ‘산별노조의 의미’나 ‘공공성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는데’와 같은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좀 더 조합원에 와닿게 만들고 싶다. 노조가 교섭을 배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정부 교섭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정부에 교섭을 압박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정권 임기 단축시키는 역할할 것”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 2026년까지 대산별노조로 전환한다는 계획의 로드맵은.
“산별전환의 핵심은 공동의 투쟁 경험이다. 이전 집행부에서 대산별전환을 결의했고 미전환 조직에 대한 사업계획을 세워 간담회나 교육을 진행해 왔다. 기초적인 준비를 해 온 셈이다. 다만 현장 조합원이나 간부들은 산별전환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막연하게 생각한다. 공동의 투쟁 없이는 산별전환이 더뎌질 것으로 생각한다. 산별노조로서 공동투쟁의 성과를 조합원들이 느껴야 화학적인 결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같은 사업장·업종인데 여러 산별로 쪼개져 있는 경우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부분을 해결할 방안도 내야 한다.”

- 새 집행부가 강조하는 ‘현장성’이 무엇인가. 왜 중요한가.
“현장성 강화가 가장 힘든 과제일 것 같다. 민주노총이든 공공운수노조든 투쟁계획이나 총파업 계획을 내고 실현하는 데 익숙하다. 집행부랄까, 사무처에서 각 단위별로 결의를 거쳐 이러한 계획을 도출하는데 실제로는 총파업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미진한 경우가 있었다. 현장과 많이 괴리돼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정체되거나 다소 후퇴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상활동부터 복원해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일종의 세대 간 갈등이랄까, 사람 간 차이들을 좁혀 나가는 과정과 작업이 현장 속에서, 일상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가 수많은 교육과 프로그램을 축적해 왔지만 현장에서 이런 교육이 실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파 혹은 현장조직과 함께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보고 현장의 일상활동이 활성화돼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투쟁을 계획할 때 지도부와 현장 조합원이 괴리되지 않아야 한다.”

- 임기 내 꼭 실현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공공운수노조가 조직적으로 탄탄해지고 현장의 조합원이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노조를 만들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산별 총파업도 꼭 실현해 내고 싶다. 위력적인 공동투쟁, 공동총파업은 반드시 해내려 한다. 이에 더해 불의한 정권의 임기를 단축시키고, 좀 더 민주적인 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고, 공공운수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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