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결혼을 앞두고 불안감이 증폭된 시기가 있었다. 우연히 포털의 여성 사이트에 연애와 결혼 사연을 읽다 보니 혹 내 미래가 될까 싶어 두려웠다. 다행히(?) 현실 결혼생활은 다이내믹하기보다는 담담한 일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들이 온라인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실제 고민과 오락이 뒤섞였단 점을 알았다. 미디어까지 인용되는 사연은 ‘판춘문예’라 불릴 정도로 잘 짜인 서사구조와 ‘사이다’ 결말을 갖춰야 조회수도 많다. 요즘은 유튜브에 비슷한 사연만 모아 읽어 주는 채널도 적지 않다. 꾸며 낸 내용이라도 네이트판 등의 글은 시대를 알 수 있는 소재다. 제비가 은혜를 갚으려고 박씨를 물어 오거나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살아온 게 사실이 아니어도, 당시 사람의 세계관과 규범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듯 말이다. 2000년대 중반엔 확실히 ‘여성 수난사’ 같은 답답한 사연이 많았다면 요즘은 달라졌다. 사회 전반의 젠더 인식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변화도 눈에 들어온다. 과거엔 남녀의 일자리 묘사가 상세하진 않았다. 의사나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남성이 배우자 집안에 부당한 혼수나 예단을 요구하거나, 헌신한 약혼자를 배신하는 사연에서나 직업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요즘은 남성은 물론 여성의 직업이 무엇인지부터 정규직-비정규직 여부, 사업장 규모, 연봉까지 상세하다. 자산 정보도 세세하다. 본인은 물론 부모의 직업, 학벌, 보유 부동산 지역과 시세까지 밝히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결말은 일종의 현대판 권선징악을 지향하기에 사회적 편견의 부당함을 고발한다. 가령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남자친구 부모님이 상대 여성 직업이 비정규직이라며 반대했지만, 알고 보면 신부 쪽이 수입도 좋은 전문직 프리랜서라 일침을 날리고 파혼했다거나. 결혼 후 시댁 친지가 이른바 ‘스카이’를 졸업한 교육자 집안임을 과시하며 친정 부모 학력을 들먹이며 무시하길래, 오히려 부모님이 강남 부동산을 보유한 성공한 자산가임을 알려 주며 코를 납작하게 해 줬다는 이야기 등등. 사이다 마무리지만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결국 이 중층화된 서열에서 누가 최종 승자인지 적나라하게 말해 준다. 임금생활자면 비정규직보다 정규직,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근무해야 하지만, 사업을 운영해도 영세자영업자가 아니라 높은 순수익과 안정적인 사업체 기반이 있으면 더 상위 레벨이다. 서울·수도권에 자가 보유, 부모 등이 건물주 등 물려줄 자산이 많으면 ‘갑오브갑’이다. 글을 쓰는 이부터 댓글을 달고 내용을 퍼 나르는 이들까지 이러한 상식이 통용된다.

사실 사연 콘텐츠의 논리만은 아니다. 각종 미디어에 넘쳐 나는 짝짓기 예능프로 역시 과거보다 남녀의 소득과 자산 정보를 자세히 밝힌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상대를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현실이 여과 없이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어느새 일자리, 학력과 학벌, 소득과 재산에 대한 강력한 서열 의식이 사람들 인식에 견고하게 내재화된 것 같다. 그에 따라 타인을 무시하거나 우러러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됐다. 예전보다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전에는 속물이나 교양 없는 태도라 여겨질 법한 언사가 지금은 솔직함이나 가식 없는 태도로 포장되기도 한다. 결혼정보 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사람을 등급으로 매긴다며 위화감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젠 사회 구성원 전반이 위계적 카테고리를 내재화한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노동하는 시민들이 일 자체의 기쁨이나 보람,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지낸다. 직장이든 가사노동이든 연구 활동이든. 그것이 꼭 경제적 가치로 바로 환산되지 않아도 인간은 자기 활동에 보람과 기쁨을 누리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그런데 일의 가치를 사람 간 등급을 매기려는 ‘경제적 가치’나 ‘상징자본’만 따지는 풍토에서 공동체를 위한 노동의 의미를 헤아리고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촘촘하게 수직으로 줄 세우는 풍토에서 자신의 위치에 상대적 박탈감·열패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의 계절이어서인지 급격한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책이 넘쳐 난다. 얼마나 유의미한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겠다. 끝없이 패자와 승자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당장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재생산 노동,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헌신이 필요한 결혼·출산·육아를 피하는 게 이례적인 현상일까 싶다. 구조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장기적인 정공법으로 풀지 않고 몇 가지 ‘단기 대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발상 자체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만드는 가장 큰 주범이 아닐까. 우리의 한계를 되돌아보고 근본적 고민을 함께하는 이들이 더 늘어나길 희망한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haeyoonj@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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