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27일 매일경제신문 12면에는 <“횡재세, 효과 없다” 69%>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실렸다. 횡재세 무용론을 ‘주장’하는 기사를 마치 객관적 사실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보도했다.

사설로 쓸 글을 이렇게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보도할 때 언론은 꼭 빠져나갈 안전장치를 만든다. 기자 개인의 주장이 아닌 취재원의 주장을 담았다고 포장한다. 이때는 쌍따음표만큼 유용한 게 없다. 내(기자) 주장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객관적으로 소개할 뿐이라는 거다.

이날 기사는 한국경제학회 설문조사를 옮겼다. 설문은 학회 패널위원 49명이 답했다. 아무리 전문가라지만 49명이 답한 결과를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기사에는 학자 2명이 등장하는데 ‘설문에 참여한 한 인사’와 ‘한 경제학자’로 익명의 숲에 숨겼다. 설문 결과 69%는 횡재세가 효과 없다고 답했고, 20%는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찬성과 반대쪽 각 1명씩 발언을 듣는 게 상식인데, 이 신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난해 언론에 등장한 한국경제학회는 주로 이런 부류의 기사에 몸을 실었다. “한국 G5 경제대국 가려면 과도한 규제 없애 기업투자 촉진해야”(매경 1월7일 6면), “업무 특수성 감안해 주52시간 개편해야”(조선일보 5월18일 B2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가 학회장을 지냈고, 그의 제자로 최근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임명된 교수도 이 학회에서 오래 활동했다. 대통령은 그 대학에 가서 젊었을 때 추억도 회상했다.

‘횡재세가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공정성을 실현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답한 학자가 20%에 달했으니, 결코 학회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학회 주장 가운데 듣고 싶은 것만 보도하는 언론이 더 문제다. 대통령의 눈은 이런 언론이 가린다.

지금 미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가 무색하게 자기 신념과 맞지 않는 책을 ‘금서’로 지정해 도서관에서 내쫓는 움직임이 거세다. 2021년부터 우파 시민단체나 공화당이 집권한 주 정부나 공화당 지역 의원들이 앞장서 1천500권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이는 미국 정치 양극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책이 우파의 표적이 됐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최근 이와 관련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26일 14면에 ‘美 학교 금서 144권 중 절반은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지난 2년간 금서로 지정된 공공 도서관 책의 절반이 ‘읽을 권리’를 내세운 학부모나 사서의 이의제기로 도서관에 돌아왔다는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끝에 “플로리다주는 지난해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성소수자를 다룬 책을 퇴출하는 안을 통과시키고, 성소수자의 정체성에 관해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고 썼다. 금서가 도서관에 돌아온 게 영 못마땅한 투다.

반면에 세계일보는 지난해 10월31일 ‘미국 문화 전쟁의 아이러니… 금서 지정이 오히려 홍보 효과’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도 미국 언론 악시오스 보도를 인용했다. 금서로 지정된 책이 다른 주에선 11%가량 대출량이 늘어나 역설적이게도 의도와 달리 금서 지정이 해당 책을 더 널리 퍼트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소개했다.

세계일보 기사는 미국 도서관협회 임원의 발언을 옮기면서 끝맺는다. 그는 “(금서 전쟁은) 도서관에 접근할 모든 사람의 권리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둘 다 보수 언론인데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차이 난다. 역시 조선일보는 격이 다른 언론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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