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 퀴어동네 운영위원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1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찬 이 순간이 4년 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의 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변희수 하사다. 2017년부터 육군 부사관으로 군에 복무하던 변희수 하사는 성별 위화감으로 군 병원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를 받으며 성별 정정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고, 부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소속 군단장으로부터 성확정수술을 위한 국외 휴가 허락을 얻은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 수술을 받았고, 복귀해 여군으로 군 복무를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군은 변희수 하사를 트랜스젠더(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 ‘여성’이 아니라 성기를 상실해 심신장애를 가지게 된 ‘남성’으로 보기를 고집했고, 2020년 1월 결국 그녀를 강제전역시켰다.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원하는 직업을 가질 권리 침해였고, 대안이 전혀 없는 해고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군인이 되기만을 꿈꿔 왔던 한 노동자가 일터에서, 이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2021년 10월 법원은 ‘여성’인 그녀를 ‘남성’으로 전제하고 한 전역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를 절실하게 바랐던 노동자는 사라진 후였다.

그런데 변희수 하사와 같이 직장생활 중 불이익을 당한 트랜스젠더 노동자 사례는 오히려 쉽게 접하기 어렵다. 트랜스젠더 노동자는 일단 직장에 들어가는 것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11월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트랜스젠더 459명 중 성별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다는 사람이 269명으로 약 60%에 달했다. 주민등록번호나 사진·출신학교·병역정보 등을 요구하는 채용 과정에서 법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 성별 표현의 불일치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은 구직이 어려울 것 같아서 성전환을 하지 않기로 하고, 또 다른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은 성전환을 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다. 이는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에게 ‘나’로서 살아가는 것과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대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나’로서 존재하면서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할 권리가 있는데도, 일터에서 성소수자들의 삶은 부당한 선택을 침묵 속에서 강요받는 것의 연속이다.

새롭게 지면을 얻게 된 이 칼럼에서 보다 ‘새롭고’ ‘남들이 쓰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기도 했지만, 결국 일터의 소수자들에 관해서는 항상 그런 글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건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문제제기를 하면 자신이 소수자라는 것이 널리 밝혀질까 두렵고, 어차피 뾰족한 법과 제도가 없으니 문제제기해도 소용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생각은 현재로서는 아주 틀린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사회의 분위기도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 변화를 열망하는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통계의 숫자로 압축되지 않는, 비슷한 것 같아도 다 다른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용기 있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올 때까지, 과거의 이야기를 잊지 않으면서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끔 힘을 모아 가야 한다. 몇 백 명의, 몇 천 명의, 몇 만 명의 변희수 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그 목소리들을 모아 공고한 벽을 허물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서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새해를 맞아 새삼스레 또 소망해 본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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