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경남 고성군 파프리카 선별장에서 로봇 설비점검을 하던 노동자가 압착사고로 숨졌다. 산업용 로봇이 사람을 상자로 잘못 인식해 벌어진 사고였다. 산업현장 로봇 도입 증가로 ‘로봇 산재’ 문제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실효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노동연구원이 2일 발표한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유럽연합(EU) 기계류 규정의 주요 내용과 한국에의 시사점’ 이슈페이퍼를 보면 EU는 기존 기계류 지침(Machinery Directive)으로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규율하기에 미흡하다는 판단하에 이를 대체할 기계류 규정(Machinery Regulation)을 지난해 마련했다. 규정은 지침보다 상위 법령으로 적용 시점인 2027년 1월 이후 개별 국가 법처럼 바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규정에 명시된 필수안전보건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기계 및 관련 제품들만 시장에 출시되거나 서비스될 수 있다. 기계류 규정은 지침보다 기계류의 범주를 확대하고 내부 자체 평가가 아닌 제3자에 의한 적합성 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이슈페이퍼를 작성한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EU 사회적 규제에서 핵심은 국가가 기계마다 세세한 안전 기준을 수립해 주는 것이 아닌 필수적인 안전보건 원칙만 제시하면 그 이후엔 제조업체부터 노조, 소비자, 전문가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해당 기계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원칙에 부합하는 기술 표준을 공동으로 작성한다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유해·위험 기계 관련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한 데다 현장 작업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 연구위원은 “현행 제도에서 검사할 수 있는 기계 유형은 30여종에 불과하다”며 “정부에서 지정한 위험 기계가 대략 150종가량 된다는 점에서 턱없이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작업자 안전을 위한 기술 표준의 구축 과정에 이해관계자 참여는 봉쇄된 채 정부 관료와 일부 전문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며 “불충분한 검사 과정으로 위험한 기계가 현장에 도입되고 유사 산재가 끊임없이 빈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의 유해·위험 기계 규제 틀도 노조부터 다양한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며 “제조업체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제거하고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더욱 안전한 기계가 도입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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