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법정형 하한선(징역 1년 이상)에 머물러 낮은 선고형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가 확정됐다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다시 처벌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다만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게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모두 적용돼 현실적인 부작용은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기소 1년 만에 ‘속전속결’ 판결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8일 크레인 방열판에 깔려 하청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한국제강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이 확정됐다. 하청업체 대표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한 원심이 유지됐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기소한 지 1년여 만이다.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최초 대법원 판단으로 관심이 쏠렸다. A씨는 60대 하청노동자가 지난해 3월16일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공장에서 노동자가 설비 보수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전력을 질타하며 A씨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A씨는 2011년과 2021년 3월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게다가 같은해 5월 산재 사망사고로 기소돼 올해 2월 항소심에서 벌금 1천만원이 확정됐다. 2심 판단도 같았다. A씨가 소송을 포기하자 검찰만 상고했다.

‘한 개 행위가 여러 개 죄 해당’ 여부 쟁점

쟁점은 ‘죄수관계’로 좁혀졌다. 다수의 법 위반이 있을 때 형량 책정 방식이 심리 대상에 올랐다. 예컨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죄, 업무상과실치사죄를 각각의 행위로 볼 수 있는지다. 형법(40조)은 한 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할 경우 ‘상상적 경합’으로 본다. 이 경우 여러 개의 죄 중 가장 중한 죄만 적용된다. 아울러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한 개의 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면 다른 죄목으로 다시 처벌할 수 없다.

한 개의 죄에 대한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다른 죄에도 미친다는 게 판례 태도다. 반면 ‘실체적 경합’으로 해석하면 각각의 행위가 각각의 죄를 구성하게 된다. 법원 해석에 따라 형량도 좌우된다. 실체적 경합으로 볼 경우 가장 무거운 죄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의 장기(유기징역 30년)에 2분의 1을 가중해 최대 4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반면 상상적 경합으로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형량인 징역 30년까지만 처벌이 가능하다. 실체적 경합범의 형량이 더 무거운 셈이다.

대법원 “보호법익, 생명·신체 보호 동일”

대법원은 ‘상상적 경합’ 관계로 판단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처음 제시된 법리다. 대법원은 △보호법익의 공통성 △행위의 동일성 △주의의무의 동일성을 근거로 제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공통적으로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보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는 모두 같은 일시·장소에서 같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한 것으로서 한 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 역시 행위가 같다고 판단했다. 기존 판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업무상 주의의무가 동일하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부과된 안전확보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부과된 안전조치의무와 마찬가지로 업무상과실치사죄의 주의의무를 구성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중처법 불기소, 다른 죄 확정시 재기소 불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연결고리’에 대한 첫 대법원 판단이다. 그러나 ‘상상적 경합’ 해석의 적절성 여부는 따져야 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벌써 ‘대기업 회장’을 보호하려는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대법원도 보도자료에 “근로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내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받은 대표이사 등에 대해 다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와도 관련 있는 문제”라고 제시했다.

예컨대 검찰이 경영책임자(안전보건총괄책임자 겸임)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는 불기소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만 적용한다면 대법원 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상적 경합으로 해석될 경우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 처벌이 확정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다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검사가 수사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을 뺀 나머지로 기소하면 상상적 경합인 경우 재수사로 다투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낮은 형량 … 경합 관계 따지는 게 무의미”

다만 지금까지 ‘분리 기소’가 드문 점을 고려하면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현재 기소된 사건은 대부분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두 적용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안전조치의무 위반 여부 둘 다를 조사하고 검토해야 한다”며 “대표이사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겸하고 있는 경우 수사기관은 두 가지 의무 위반을 조사해야 되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임에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만 기소해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로 다시 처벌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형량 변화 역시 미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2건 선고 중 한국제강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그쳤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는 “형량이 유기징역 장기에 근접한다면 몰라도 지금까지 나온 형량을 보면 상상적 경합이든 실체적 경합이든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범이나 혐의가 중대할 경우 상상적 경합 해석이 문제될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를 같은 선상에 두고 해석한 점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인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중대재해처벌법의 주의의무와 고의·과실 범위가 달라 실체적 경합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며 “그러나 먼저 충분한 처단형을 정하지 못한 법원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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