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 21일 부산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호 선고 판결이 있었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부산지법 형사 4단독 장병준 부장판사는 피고들의 법 위반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사업장 종사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반복되는 중대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고인들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에게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원청 대표자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원청업체인 성무종합건설 법인에는 5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심 판결 중 가장 낮은 판결이다.

이번 부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호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현재까지 진행된 1심 선고로는 12번째다. 1호부터 12호 선고까지 판결을 보면 모든 재판부가 피고의 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단 1건의 실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행유예로 판결했다. 유일하게 실형을 받았던 한국제강 사건도 최저형인 1년 징역형을 받았을 뿐이다. 재판부는 왜 산재피해 유족들과 노동계가 죽음을 무릅쓴 단식투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려 했는지를 다시금 고민한다. 스스로 법취지에 맞게 판결하고 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2022년 한 해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은 611건이었다. 2년이 지나는 지금 현재까지 기소된 사건은 고작 32건이다. 선고된 사건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피해자의 알 권리를 외면하고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고용노동부와 대기업 눈치 보느라 늑장 기소와 협소한 구형을 내리는 검찰, 솜방망이 처벌을 남발하는 재판부까지 법을 제대로 집행해야 할 기관들이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에 거듭 장단을 맞추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라도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더불어 재판부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회사와 한 합의와 처벌불원을 근거로 피고들의 양형을 감형해 주는 관행 또한 재고해야 한다. 마치 피해자의 합의와 처벌불원이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진정 어린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 약속인 양 인정하고, 피해자 가족들이 위로와 보상을 받은 것처럼 여겨 그동안 수많은 판결에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업에 ‘보상’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오히려 재판부는 중대재해가 왜 발생했는지를 자세히 살피고, 제대로 판단해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임무다. 그래야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이 위로받고, 가족이 고통에서 치유받을 수 있다. 더 안전한 현장으로 바꿀 수 있다.

올해 부산에서만 35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했다. 어찌 부산만의 문제일까. 매일 2~3번 이상 울리는 ‘중대재해 사이렌 사망사고 속보’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끊임없이 목숨을 잃고 있는지 실시간 깨닫게 해준다. 3년의 준비 기간도 부족하다며, 또다시 유예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일주일이라도 중대재해 사이렌을 설치해 중대재해가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유예가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정부와 여당이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위해서 추진 중인 50명(억)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유예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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