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던 자식을 잃으면 맑았던 세상이 갑자기 흑백으로 변하고 내 생이 그 시간에 멈춰 버립니다. 길을 걷는데도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한동안은 걷는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가정에 산재사망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이나 해보고 ‘개악’을 시도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민주노총과 생명안전행동, 정의당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한 얘기다. 김 이사장은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생사를 걸고 개악을 막고자 한다”며 “사람들이 억울하게 더 죽지 않도록 힘을 보태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기간 연장에 반발해 열렸다. 정의당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 배진교 원내대표, 강은미·이은주 의원과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이백윤 노동당 대표, 김찬휘 녹색당 대표가 참석했다.

이날 당정은 내년도 예산 1조2천억원을 포함해 총 1조5천억원을 투입하는 내용이 담긴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 지원대책이 “지난 3년 이미 실패한 맹탕 대책의 재탕 삼탕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지난 3년간 매년 1조2천억원 내외로 예방사업 예산이 투입됐는데 이날 발표한 2024년 산재예방 예산도 그 정도 수준이어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신규사업은 중소기업 협회나 단체에 공동안전관리 컨설팅을 지원하는 사업(120억원)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안전보건 인력양성을 비롯한 각종 대책은 이미 지난해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으로 제시한 ‘위험성 평가 의무화 법제화’도 이미 포기한 상황에서 (이날 발표된) 각종 대책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민관합동 중대재해 대책 추진단’에 당사자인 노조를 빼고 사업주 단체만 참가시키도록 한 점도 비판했다.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년간 시행을 유예해 내년 1월27일부터 법이 적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법 적용을 앞두고 재계에서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유예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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